시편51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시 51:15)

생명있는 신앙 2013. 8. 19. 06:06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51:15)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져 있고,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의식으로 하나님의 의를 진리대로 인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에 대하여 선에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선대로 행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주인이시며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시나 하나님은 당신을 당신의 선에 낮추어 행하시는 것을 즐거워 하셨습니다. 최초의 만물을 만드셨을 때 그것을 보시고 선하다 하셨고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선을 기준하여 존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피조물에게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아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자연적으로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라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모든 만물을 선악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고 선하다고 판단이 되는 사람을 일컬어 의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법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곧 의미를 달리할 뿐 의인이며, 그 사람의 행위를의롭다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감하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의 행위는 의로운 행위라고 하고, 이런 행위가 악인의 행위라도 용감한 자기 희생의 행위를 의로운 행위”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람에게는 의를 행할 어떤 능력도 없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바로 이점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한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악에 빠졌고 너희의 행위는 거짓의 행위이고, 너희는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사람이며, 너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 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저런 죄를 지었고 그 죄들로 인하여 괴로워 나이다. 이런 죄들을 내가 고백하오니 자비로우신 은혜로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공적인 기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도 그렇게 고백하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습니다(11:9).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런 적용이 적절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의를 행할 능력이 없고 선을 행한 지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데 사람들은 어떤 행위는 선을 행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자기들이 인식하기에 악하다고 판단되는 그런 행위를 죄라고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합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전무한 사람이 일부 선을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의를 높이 노래하겠다고 노래한 것에 관한 의미에서를 살펴 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하나님의 의는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의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결코 선한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선에 맞추셨습니다. 그 선은 "질서롭고 조화로운 것"이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사역이 바로 이 선에 적용되어져 행하시는 것입니다.

반면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과 지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선 피조믈이고 지음을 받은상태에서 벗어나 선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죄의 유무를 스스로 판단하여 정죄하거나 의롭다 판단하고, 정죄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요구를 자의로 행하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의의 기준에 따라 행하시는데 그것이 곧 선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자의로 충분히 하실 수 있으시나 스스로 자기 한계를 가지시고

그렇다면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그리스도나 구원자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정하신 하나님의 구원방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알고 있는 바는 율법으로 명한 번제를 드리는 것인데 이는 자신의 범죄 행위를 공개적으로 번제 단으로 가져가는 것은 백성들로부터 왕에 대한 큰 불신을 초래할 것이 자명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에 커다란 피해가 되며 자기는 용서를 받을지는 모르지만 실지로 하나님의 나라에는 커다란 불안과 명예의 추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윗은 자신의 행위의 중요성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잘 이해하고 있었던 터라 하나님께 직접 용서를 얻는 지혜로운 방법을 택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이전에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완악함으로 이스라엘의 명예가 흔들렸고 결국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더욱 가슴을 찢고 자신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 자기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사하시는 은혜를 하나님의 선에 적용시켜 행하시므로 실지로는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두시고 다윗의 개인적인 가족에 징벌하심으로 마무리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스스로 무슨 일이든지 결정하실 수 있고 하실 수 있으나 일개의 개인 한 사람의 행위라고 결코 자의로 행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선에 적용하여 행하심으로 하나님도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행위도 흠이 없이 의로우심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구원의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자신이 삶속에서 분명히 드러났고 체험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삶이 자기의 개인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삶이라고 인식하고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에게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채워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존재해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이 죄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 한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영혼들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필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온 세상에 말하는 것 보다 범죄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오도록 하나님을 높이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