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시51:14)
다윗의 고백으로 볼 때 죄에서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뿐입니다. 우리도 이런 죄악의 행위에 빠지고 나면 용서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심지어 죄를 지을 때 조차도 용서를 사전에 생각함으로 두려운 마음이 감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질은 그 정도의 차이에 관계없이 반드시 죽음뿐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행하는 그 정체가 사람 안에 있는 반드시 죽거나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온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지식으로 왜곡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 거듭나기 전까지는 타락한 본성인 왜곡된 지식만 있습니다. 이 지식은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지식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시켜 이해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인 말씀을 거절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지아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사람들을 지으실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의 욕망에 따라 살 것을 미리 아시고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이탈하여 거짓된 지식에 치우쳐 살 것을 미리아시고 이들이 거할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이탈한 왜곡된 지식으로 사는 사람의 모든 행위가 죄고, 이 죄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행위는 반드시 범죄 이고 이 범죄로 인하여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데 원리적으로 하나님께서도 이 죄를 용서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용서가 거짓된 지식의 행위를 진리인 지식으로 바꾸어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죄로부터 자신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은 전적인 은혜로 죄에서 자신을 들어 올리고 죄와 분리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죄와 분리시키려면 사람 안에 새 사람을 심고 그 사람을 죄와 관계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영혼에 심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새로운 지식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거듭난 지성의 지식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피흘린 죄로부터 사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만약 새로운 지식으로 거듭난 지성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죄에서 결코 건져 낼 끈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전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3:4의 “모든 사람은 거짓되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 안에 있는 지성의 지식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지식인지 아니면 자기지식인지 그 말씀에 의해 구별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영혼 안에 한 사람으로 두 지식 그릅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나는 욕구에 쉽게 매인 거짓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진리의 지식이 있어 다윗의 거짓된 지식으로 살 때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를 정확하게 구별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지 않은 모든 사람은 거짓 지식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서는 선하지 않은 삶이 드러납니다. 실지로 아담의 모든 후손이 이와 같이 거짓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롬3:9)”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차별이 없느니라(롬10:12)”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점차 뚜렸해져가는 사람의 거짓됨의 정체를 보면서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모든 지식들의 정체를 분별해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윗과 같이 순식간에 사로잡힌 욕구로 말미암아 피흘리는 죄를 범하고, 가인과 같이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 살인을 직접 저지르고 하나님께 자기의 행위를 변명하는 거짓된 사람처럼, 우리 안에 있는 거짓된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행동을 이끌지 못하도록 우리가 거듭난 지성의 사람으로 더욱 성장해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분별하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종교 행위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를 “경건의 모양”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사도는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딤후3:5)”에 말했는데 결론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딤후 3:7)”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증거의 말씀으로 고차원의 종교의 정체를 밝힌다는 것은 무리이지만 분명한 것은 거짓의 사람들이 명예를 위해 거짓된 종교에 심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영의 사람들이 아닌 육의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백성들에게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 말은 물론 문제의 본질에서 가까이 접근하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서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작정과 허용적 작정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기 백성은 작정에 의한 아담의 후손들을 의미합니다. 이를 사도는 약속의 아들이라고 했고 총칭하여 이스라엘이라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종교에 지나치게 십취하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에 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볼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못한 거듭나지 못한 지성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실지로 그들의 영혼에는 거듭난 지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대적하고 원수가 되었으며 결국은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정죄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한 그들의 신앙은 과연 무엇입니까?
매 절기만 되면 기드론 시냇가에 흐르는 피는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짐승들의 피가 강을 이루고, 그 많은 희생의 제사를 엄격하게 드리며 경건의 모양을 갖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사도의 책망에 해당되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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