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51

죄인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51:13)

생명있는 신앙 2013. 8. 15. 07:44

죄인이 주께 돌아오리이다(51:13)

 

죄인,”

다윗이 말하는 죄인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자신인가요?

다윗은 자기 안에 있는 자신을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기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욕구의 노예가 되어 정욕이 이끄는대로 끌려갔을 때, 의식하고 있는 하나님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으로 아는 하나님이었으니, 사람이 자기의 생각으로 피할 수 있으며 속일 수 있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죄를 행하지만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보지 않으시기 때문에 마음 놓고 죄를 범하되 단 사람들의 눈을 피해 스릴을 느끼고 죄를 행한 것입니다.

그 지성에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죄인의 상태인 것입니다.

욕구에 사로잡힌 영혼은 거듭난 영혼과 다른 영혼이 아닙니다. 하나의 영혼 안에 혼합되지 않고 전혀 유기적이지 않으며 근원을 달리하는 지식이 함께 있으며 이 지식들이 그릅을 형성하여 서로 다른 지식이 상황에 따라 육체에 서로 작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렇게 깨닫고 죄인을 말하였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자기 안에 있는 두 지식의 그릅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드러내는 행동이 그것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두 지성의 삶을 교차적으로 드러내는데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이 두 지식의 그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최초 지음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천품을 버리고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식 그릅, 즉 거듭나지 않은 지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의 지식 그릅인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사람뿐입니다. 이것을 사도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3:28),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작정에 의한 택자나 불택자들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이제 다윗이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라고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해한 것으로부터 시편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핍박하기를 살기가 등등하여 더욱 광기를 드러낼 때 주께서는 다메색 도상에서 그를 넘어뜨리고 새 사람을 심으셨습니다. 그가 일어나 눈을 뜨려고 했을 때 세상을 향하여는 어두워졌고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도 세상에서는 그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직접 빛 가운데 나타나셔서 그가 보고 있는 세상의 창을 닫아 버리신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보는 모든 감각으로부터 어두워지게 되었고 헤매는 사람이 되었을 때 오직 한 가지 빛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가 영혼에 새겨지게 되었고, 자기지식으로 이해 안 되는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사건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울에게 그리스도를 조명하셨으며 비로소 사람들의 죄와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예수가 만유의 주인이심을 알았고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죽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밀과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아 이방인에게 보에게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사명의 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이 필연적으로 범하고 있는 생활적인 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의 원죄 때문이라는 사실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화목하시고 이방인을 얼마간 구원하신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후 교회의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꼽으라하면 어거스틴을 말합니다. 그가 마니교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진리를 찾아 헤매며 방황하다가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경위가 그의 책 고백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한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철저히 깨닫기까지의 서술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과 사랑이 아니고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고백록 제일 첫 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을 알지도 못하면서 당신을 부를 자 누구리이까? 이는 알지도 못하면서 애먼 것을 부르기가 쉬운 연고니이다. ----주여 나는 당신을 부르면서 찾고 당신을 믿으면서 부르리니, 이는 당신이 우리에게 전파 되었음이니이다. 당신을 부르는 것은 주여 나의 믿음인바. 이 믿음으로 말하면 인성을 취하신 당신의 아들로 말미암아, 또 당신이 세우신 전도자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내게 부어 넣어 주신 것이니이다.


 

정욕의 아들들이며 하나님이 원수인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게 된 것처럼, 하나님을 부르는 일은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 있어서 지식으로 형성된 거듭난 지성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이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가 되어 범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