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51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고(시 51:10)

생명있는 신앙 2013. 8. 12. 06:25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51:10)

 

다윗은 자기의 죄를 보았고 그 죄는 자기의 본성에서 나온 추악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는 더러운 반역죄와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이 죄의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 죄에서 얼굴을 돌이켜 보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신으로부터 얼굴을 돌려 보지 않으시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죄에서 얼굴을 돌이키면 자신에게서 얼굴을 돌이키는 것이 됨으로 다윗은 곧바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지으셔서 그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사상입니다.

바울이 다윗을 언급하여 말하는 것을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어집니다.

그것은 죄 된 인간의 본성이 어디에서 부터인지를 설명하려는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는 영혼에 있고 영혼은 육체로 하여금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명령하는 인간의 중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행위는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 드러내는 것입니다. 죄의 중심에 있다면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중심에 있다면 말씀에 따라 행하도록 할 것입니다. 죄와 말씀은 지식이고 이 지식은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하는 것입니다. 지성은 죄도 생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지식도 생성합니다. 이 두 가지의 지식은 자기스스로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을 때 그 말씀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 말씀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생성한 모든 지식은 왜곡되고 거짓된 진리가 아닌 죄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는 자신의 내면을 인식하는 한계는 마음까지 뿐입니다. 자기 안에 영혼과 지성의 작용, 감성에 의한 지각 작용이 있으나 마음까지 느끼고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구조가 육체와 영혼이 있으나 이들의 모든 작용들이 마음으로부터 육체의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행위는 마음에 있을 지라도 행위를 드러내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영혼은 수많은 지식을 마음에 반영하여 행위를 드러내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으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4:7)”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는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가인의 마음에 있어 가인으로 하여금 죄를 행하도록 대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마음에 있어 죄를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지식이 마음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셔서 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막는 방법입니다. 즉 사람이 죄를 행하려 할 때 그 영혼에 말씀하셔서 말씀으로 하여금 죄를 볼 수 있는 지식을 마음에 반영하게 하면 그 지식이 죄를 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거짓되고 선하지 않은 무질서하며 부조화 지식임으로 하나님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사람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다윗이 선지자 나단의 말을 들을 때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죄와는 전혀 다른 지식이 생성되어 마음에 반영되었을 때 다윗은 자기의 행위의 죄를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지식으로 자신의 상태를 보고 선하지 않은 행위를 억제하거나 아니면 죄를 행하거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반영되려면 이미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 있어야 합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만나 여러번 대화를 하였으나 놀랍게 가인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은 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충격적인 비밀은 추후에 다시 설명을 드릴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과 관계된 출생의 비밀에 속합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의 작정에 포함된 사람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 정욕이 일어났고 그 정욕에 의해 잉태되어 태어난 날 때 부터 하나님과 원수 된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가인의 영혼에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만나주셔도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인의 영혼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지라도 그 말씀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지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인은 진리를 들으면 그 진리는 왜곡된 거짓지식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그가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자 그의 영혼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들이 말씀을 들으므로 깨어나 다윗의 마음에 새로운 지식을 내 보냈습니다. 그 지식이 다윗의 마음에 반영되자 다윗은 자기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고 자기가 행한 죄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에 들어오는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생성되어진 지식이어야 합니다. 다윗은 바로 이 지식이 자기의 마음에 들어와 자기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만 초점이 맞추어진 삶을 살기를 소원하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0)

 

정직한 영, 그것은 실재로 사람의 영으로 영혼의 지성이 생성한 지식을 말합니다. 이 영은 사람의 이외의 어떤 기운이 사람에게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내에서 이 영을 어떤 기능적 힘이나 기운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다윗도 자신이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하지만 이 영에 관한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 정확하게 무엇인지 말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로마서를 살펴보고 시편을 몆일간 살펴보면서 분명히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되어 우리육체로 하여금 행동하게하는 것인데 그것이 지식이라는 결론을 지금까지 분명히 얻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내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6:63)”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의 영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신데 예수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영은 사람의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기독교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직한 영으로 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교회가 선지자 나단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만을 외치는 교회가 되기를 참으로 소원합니다. 그래서 십자가 아래로 자기를 들이기만 하면 그 안에서 회개와 새 마음을 갖는 신자의 모습으로 나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자가 되기를 말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마음으로 자기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