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사람은 다 거짓되되 (14) 롬3:4

생명있는 신앙 2013. 8. 25. 20:53

 

우리 선 배 신학자들이 죄를 어떻게 말했는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죄를 판단하는 개념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우리자신들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배들은 성경에 따라 죄의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일탈한 사단의 간계에 의한 꾀임에 스스로 넘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모든 죄의 처음은 교만이라고 했고, 칼빈은 죄를 불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바울 이후에 교회를 위해 헌신인 이들의 가르침 때문에 우리의 영혼의 수고가 한결 가벼워졌고 쉽게 진리에 이를수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도록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쯤 어두움에 휩싸여 성경의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것이 분명하고 교회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모두 제 길을 행하여 날뛰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말았을 것입니다.

선배 신학자들은 자기들의 사명에 따라 충실하게 교리를 위해 헌신했으며 자기의 고뇌와 견고한 신앙의 터전을 전수하기 위해 사도 바울의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성경의 교리를 설명하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들의 몸은 질병으로 온전하지 못했으며 세상의 세력과 권력들은 이 땅에 진리를 심으려는 그들을 위협하여 진리를 쏟아내지 못하게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연약함으로 오히려 세상에 빛을 발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 안에서 강력하게 성령으로 조명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쏟을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교만이라고 보았고, 불순종이라고 본 것은 전자는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의 존재 이상을 넘어 자기를 과신하여 하나님께서 진리로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해 얻어진 진리로 반응함으로 지음을 받은 대로 완전함에 나아갈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탁월함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여 자기의 탁월함으로 하나님의 목적으로부터 벗어나 버린 것을 말하고, 후자는 그들이 자기를 과신하여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은 자기 영혼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이 바른 길을 인도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거절한 것을 말합니다. 죄에 관하여 이 두 신학자들의 말이 지극히 옳은 것은 교만이나 불순종이니 모두 죄는 자기의 탁월함으로부터 우쭐대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선에 이르도록 부여하신 하나님의 형성을 멸시함으로 무용지물이 되게하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피조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 뿐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 무엇으로 구별 됩니까?

피조물은 자기가 아무리 뛰어난 탁월함을 받았고, 완전할지라도 존재하게 하시는 창조주가 부여한 작은 것 하나라도 자기를 위해서 조화롭게 작용되어질 때 완전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사람은 자기를 위해 부여한 자기 안에 있어야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여 거절함으로 지음을 받은 상태로부터의 조화를 상실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무용지물이 되게하여 사람에게 더 이삼 그 어떤 역할을 할 필요가 없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가지 하나님의 형상과 그 역할에 대해서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은 다시 반복하여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며, 반복하는 말로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처음 이들을 읽는 사람을 위해서 다시 반복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피조물인 사람에게 지식을 생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지식이 담겨져 있는 그릇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식은 형상에 담겨진 지식으로 1) 하나님에 관하여, 2) 하나님에 대하여, 3) 창조에 관하여, 4) 사람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인 것입니다. 이 지식들은 사람 안에 있으나 사람에게 인식하는 지식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이 지식이 있어서 사람이 이 지식으로 지각하고 인식한다면 사람의 모든 인식과 행동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이 지식에 있게 됨으로 사람의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지식의 행동이 되어 결국 모든 행동의 책임이 하나님께로 돌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때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으로 말미암고, 이렇게 생성된 지식을 지각하고 인식함으로 완전하게 사람으로서 존재의 삶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본바와 같이 사람이 육체의 오감을 통해 보거(시각)나 듣거나(청각) 맛을 보는 후각, 만져서 느끼는 촉각, 먹어서 느끼는 미각을 가지면 이를 지식화하여 인식합니다. 이때 감각에 대한 지식을 자기 스스로 지성이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주신 지식의 조명을 받아 자기지식을 생성하는데, 조명하는 그 지식이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본유 지식인 것입니다. 사람이 피조물인 것은 감각된 객체에 대한 모든 것을 인식하여야 하는데 이 지식을 본유지식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인식하여야 합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본유지식으로 인식한다면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임으로 사람의 모든 인식과 행위가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피조물이므로 사람에게 지식을 생성할 수 있도록 지식을 미리 주셔야 했는데 그 지식이 바로 본유 지식이고 이 지식의 조명을 통하여 사람이 감각한 모든 객체에 대한 지식을 사람의 지식으로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교만하거나 불순종한 것은 하나님께서 별도로 말씀하신 명령에 대하여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본유지식의 조명을 통해 인식하고 행동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탁월한 능력으로 자기지식을 생성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을 멸시하고 자기의 지식으로 생성한 지식인 것입니다. 이 지식에는 자기의 순수의 지식의 조명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존재가 조명하는 지식으로 치우쳐 신뢰함으로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몰아내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주어진 참된 지식을 멀리함으로 사람의 영혼은 즉시 어두움이 몰려왔고, 사람이 생성한 모든 지식은 거짓이 되고 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