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거짓되되.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언덕에 오른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나아간지 얼마되지 않았으나 교회성도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저를 지켜보는 가운데 신앙이 있어보였든지 주일학교 교사를 추천하였고 매년 행하는 교회 봉사자 구성 개편때 중학생 8명의 반을 맡아 그들의 교사가 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한참 신앙이 성숙해 가는 도중 교회의 설교를 통해 은혜의 만족을 받지 못하게 되자 자연히 은혜가 있는 곳을 찾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교회는 성장의 시기였기 때문에 곳곳에서 부흥회를 이끄는 교회들도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천막을 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 집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들의 집회를 다니면서 신앙을 성장해 보려는 욕구가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는 매일 집회를 다니면서 성경에 집중했고, 심지어는 기도원에서 생활을 하면서 은혜에 깊이 몰입되는 시기였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는 은혜의 삶은 살던 그때는 마치 천국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도시를 내려다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나의 미래를 생각하며 상념에 잡혀 있었을 때 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온 세상을 물로 뒤덮을 물이 하늘로부터 쏟아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물 사이로 하늘로부터 한 빛이 내려와 도시의 한 건물에 기둥처럼 내려 섯습니다.
아! 밝은 빛이다.
구름이 뒤덮인 어두움 사이로 내리는 빛은 하늘에 있는 태양의 빛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아무런 의미없이 받아들이고 당시에 느낌은 “아! 빛이 이렇게 밝구나“ 하는 감정만 인식되고 있었을 때 나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들리는 한마디의 말씀이 솟아 나왔습니다.
“세상은 어두운거야”
이것은 나의 영혼이 온 세상을 보고 말하는 증언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판단하는 나의 영혼이 어두움에 있어서 모든 것을 어둡게 보고 어두움의 질서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묘한 느낌을 가진 이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의미 없이 받아들이고 이 빛을 본 것을 “계시를 보았다”라고 잘못된 말로 청년회 소그릅 모임에서 이야기하면서 그 본 빛에 관하여 말하며 은혜 아닌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당시에 함께한 교사들과 다른 형제들은 나의 이런 경험을 이단적인 체험으로 간주하고 하나둘씩 저를 멀리하더니 어떤 청년이 교회에서의 나의 이런 일탈적인 행위를 목사님께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주일학교 부장집사님의 면담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고 다시는 그 교회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의 징계나 혹은 출교조치를 당한 것이 아니라 부장집사께서 저에게 부탁하는 말로 요청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출교라고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충격적인 일들이 있고난 10년이 지났을 때 현재 이단이라고 정죄되었으나 당시는 이단이라고 정죄되지 않았던 어떤 능력자의 집회에 참여 했는데 우연히 당시의 담임 목사님과 한 숙소를 배정받았고 그때 나는 이미 장로교회 목사로 안수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교회에서 출교 당한 이유가 아주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목사님은 교계에서 유명한 목사님으로 교단에서 존경받는 분이시지만 당시 상황을 전혀 모르고 계셨고, 부장집사가 저에게 와서 교회를 안나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은 부장집사의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당시 부장집사는 분명히 “목사님께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도 좋겠다 라고 판단하고, 그 다음 주부터 교회를 방황하는 미아 생활을 수년간 했었는데 그것이 자기의 의견이 아니라고 하셨던 것에 대해서 지난 날의 신앙생활의 방황이 매우 힘든 날들이었기 때문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뭐야 상관할 것은 없습니다.
지금에 와서 당신도 목사님이시고 저도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목사로 부름을 받았든지 사역자로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고 성도 섬기는 일에 전념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일에 우리가 본을 보여 지난 일을 잊어버리고 주님을 향하여 열심을 다하면 됩니다. 없던 일로 생각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화해 했었지만, 그것이 교회와 저의 삶의 방황을 통해 당시 목사로 부름을 받기 까지 신앙의 중심이 된 삶을 살려고 발버둥치며 주님만을 의식하며 달려온 수 날들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그 빛은 나의 영혼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그 빛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빛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빛이 의미를 주는 빛이라면 반드시 그 빛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제가 본 그 빛의 정체는 이 세상 피조물로 지음을 받은 태양으로부터 비취는 빛이 아닌 것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믿으실 분은 믿으식고)
지금 그 빛이 저에게 한발 한발 매일 다가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사도바울의 로마서 3장 4절의 말씀과 칼빈의 기독교 강요 2권 3에서 한 말들과 함께 날들처럼 하루하루 다가오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 빛의 다가옴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체에 대해서 놀라기도 합니다. ‘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 그 언덕에서는 육신의 눈으로 보았으나 이제는 그 눈으로 결코 볼 수 없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합니다.
“사람은 거짓되되”
이 말씀을 우리의 온몸과 진심으로, 영혼의 모든 것과 전인으로 인식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제발 자기의 삶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깨달아야 겠다는 신앙에서 벗어나십시오.
여러분은 모든 것이 거짓되어 있습니다.
자체가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선이라고는 한 점 만큼도 행하지 못하는 거짓의 사람입니다.
뼈속 깊은 골수까지 거짓으로 물들어 있고, 선하다고 판단하는 그 마음조차 거짓입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들이 자기의 죄를 죽이려고 발버둥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는 신앙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죄를 죽이려는 의식속에 자기가 인식하지 않은 선이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기가 판단하는 죄를 보고 그것을 죽이려합니다. 결국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실지로는 자기가 선하다는 근본적인 의식이 의식되지 않은채 의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체는 죄의 본성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선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 죄는 여러분을 활동하게 하는 영혼의 지성에서 명령하는 지식입니다.
시편 51편을 우리가 살펴보는 동안 한 가지 분명하게 안 것은 육신의 삶과 영의 삶, 곧 거듭나지 않은 지성, 과 거듭난 지성이었습니다. 여러분 안에 거듭난 지성이 없으면 여러분이 죄를 보는 시각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으로부터 본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본 죄를 자기의 죄가 본 것입니다.
사람이 거짓되되라는 말은 전인과 성향과 경향을 모두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라고 말할 때 자기의 모든 것을 분명하게 죽이고 주님앞에 서야 합니다.
죄의 본성을 벗어버릴 때 주님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
죄의 본성은 여러분이 인식하고 있는 모든 지식의 근원인 영혼에서 주는 인식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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