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하나님의 의(롬3:5)

생명있는 신앙 2013. 9. 6. 14:44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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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4절을 넘기면서 여러 날 동안 죄에 대한 진통을 겪으면서 큰 암벽을 오르는 것 같은 하나의 커다란 산을 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확신한 것은 우리의 죄가 우리의 온몸에 스며들어 있으며, 죄가 우리에게서 나와 세상을 더럽히는 것을 알았고, 죄는 사람으로 활동하며 살게 하는 영혼의 지성에 있는 지식들이라는 것과, 지식의 구체적인 본질은 객관적 사실과 객체에 대한 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는 불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이며, 그 지식들로 구성될 타락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죄의 본질은 객관적 사실과 객체에 대한 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여 불완전하게 지각된 지식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죄를 설명하면서 지식을 생성하는 영혼의 지성과 생성된 지식을 지각하여 지성에 새겨지게 하는 영혼의 감성작용인 지각, 그리고 지각된 지식을 행동으로 반응하게 하는 의지의 작용에 관하여 상세하게 성경의 예를 들어 설명해 왔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위의 사실들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므로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로마서를 살펴 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앞에는 또 하나의 산이 있습니다. 그 산은 지금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모두를 설명하려면 아마 이세상에 있는 모든 종이위에 빽빽하게 기록하여도 타락한 우리의 지성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바와 같이 사도가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이 거짓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하나님의 의를 살펴본다면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의 지성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지각과 인식을 갖는 순서는 이렇습니다. 먼저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의라는 질문에 대한 표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물과 같은 객체가 아니고, 그렇다고 활동하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우리의 지성에 뚜렷하게 조명할 수 있는 어떤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의라는 표상이 반영된 시점에서 그것을 인식하려는 주체자의 관념이나 혹은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정의된 개념들에 대한 확실성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즉 다양한 논리적 이론들이 이미 알려져 있고,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의 편리한대로 선택적으로 어떤 논리를 받아들여 자기지식으로 지각하여 인식한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자기 영혼의 감성이 지각을 가지고 그 지식을 인식함으로하나님의 의에 대한 자기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인식한 지식들은 대부분 진리 여부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기 기호에 적합한 어느 하나의 지식을 자기지식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심지어 진리라고 까지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영혼의 지성에 지식을 가지는 방법이 이와 같습니다.

사도가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3:8)”이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고 말하는 이유였습니다. 사도가 진리에 대해 눈을 열고 새로운 거듭난 사람의 삶을 시작하는 그날부터 수년 동안 그리스도에 대하여 새로운 진리들을 자기의 영혼에 충전하고 있을 때, 그로부터 많은 교리적인 논리들이 흘러나오게 되었고, 지금은 그 지식들이 세상을 적시고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자기가 전통적으로 배워온 교육을 배경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성령의 강권적인 조명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가 부름을 받은 이후, 그의 영혼에는 빈 서판위에 쓰여진 한줄의 복음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빛을 발하여 서판에 지식이 채워져간 것처럼, 그 지식들이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지식이 되어 그로부터 넘쳐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지식에 적시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지식은 사도가 전통적인 교육기관인 예루살렘에서 배워온 지식이 아니라 자기 영혼에 심겨진 복음을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말미암은 그 지식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의에 관하여 지각할 수 있는 진리의 지식을 가지는 방법을 사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성이 진리로 통하는 길은 복음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들에 대한 표상을 복음에 투여하고(복음의 주머니에 넣고) 그 위해 성령께서 조명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가진 모든 지식을 가지시고 계시기 때문에 복음에 들어있는 지식을 진리대로 밝혀줄 때 우리의 지성은 진리대로 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억지로 해석하려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이 조명을 받음으로 같이 왜곡된 지식을 가질 것이고, 이 지식을 억지로 진리가 되게 하여 편견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지식이 나타나 혼란스럽게 함으로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자기의 의견과 합하지 않거나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나누고 어지럽게 하여 불신하도록 할 것입니다.

복음과 성령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진리와 성령이라고 하셨고 이를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리와 성령은 항상 함께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담긴하나님의 의라는 질문을 성령께서 조명하시면 우리의 지성은 어떤 지식을 가지겠습니까?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의라는 주제는 질문입니다. 구체적인 어떤 개념이나 정의를 가질 수 있는 논리적인 개념이 아닌 순수한 질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진리를 가진 사람에게 의미를 알고자 해서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지식이 없고 문제만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 안에 정의와 개념을 진리대로 넣어주셔야만 합니다. 성령의 조명이란 바로 문제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객체를 감각하여 지성에 반영된 표상처럼, "하나님의 의가 표상으로 지성에 반영되어 있는데 성령께서 그것을 밝혀주셔서 사람의 지성이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하여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조명이라 합니다.

타락하기 이전에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본유지식(사람으로 하여금 지식을 생성할 수 있도록 밝혀주는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 조명하여 자기지식을 생성하도록 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함으로 이 지식이 형상과 함께 망실되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타락후 구원받을 신자들에게는 성령께서 조명하셔서 완전한 지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의라는 산을 죄의 산을 넘는 것처럼 많은 시간동안 많은 날을 의의 동산을 산책할 것이고 이 산에서 많은 진리들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서는 성령의 조명하심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복음의 빛을 힘입어 선한 말씀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노래를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 우리가 원하는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사람의 지성에서 나오는 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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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신 에 관하여 가장 먼저 ”의 본질을 볼 것입니다.

앞에서 죄의 본질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불완전한 지식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무지와 결함이 없는 완전한 지식이 의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가 죄의 반대 의미를 가질 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의 본질에 관하여 파악할 때 가 무엇인지부터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사도 바울과 야고보에게서만 나타납니다.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2:25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임하는 그날에”,

3:21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으니”,

3:2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 하였느니라

고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3:9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야고보 1:20 “사람이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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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도 바울의 의의 개념은 로마서 4:25절에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라는 증언 속에 하나님의 의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하나님 입장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사도는 사람의 지성으로 가장 선한 말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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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육체는 전율하고 있습니다.
내안에 있는 모든 것들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노래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합니다. 그것은 음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