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서 어떻게 믿음이 일어납니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노래하기도 하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예배와 헌신을 드리기도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믿음도 가지고 있고, 설교를 들을 때나 할 때에 진한 감동으로 흐느껴 울기도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복받이는 감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쏟고 또는 믿음을 갖게하는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는 구조적 동인이 무엇인가요?
믿음은 피조물인 사람에게서 어떤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지 지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안에서 일어난 믿음의 진부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그 믿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속화가 점령한 오늘에 있어서는 내게서 일어난 믿음이 어떤 작용에 의해 우리의 전인이 반응했는지 살펴 볼 수만 있다면 신앙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정의가 이미 혼란스러운 지식들로 파생되어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의 믿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피조물에게는 수많은 사건들이 시간의 제한을 넘어 각인에게 인식될 수 있도록 지식으로 감각되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는 지식은 2000년 전에 중동의 이스라엘, 골고다 언덕에서 하나님께서 주제하시는 제사입니다.
수많은 전쟁들, 사건들, 그리고 역사적인 진실들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집중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 사건의 동기와 의미, 그리고 가치에 감동되어 그 사건을 우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하게 됩니다.
어떤 동기에서든지 역사적이며 객관적 사실들을 지식으로 접하여 자기에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함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종교와 같이 전달된 지식으로 하여금 붙잡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를 붙잡거나 받아들인 지식들과 자기와의 관계를 창조적 구조를 근본으로 잘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기의 정체에 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상당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이 확신되지 않고 자기에 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객관적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삶을 변화시켜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에 관하여는 대부분 그렇습니다.
실지로 우리는 믿음을 말할 때, 믿음이 여러 가지로 구별된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 의아해 하겠지요. 우리는 그런 사실에 관한 지식조차 없는 무지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지식들을 받고 판단하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합니다. 우리 안에 영혼과 육체의 구조적인 기능들이 온전하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작용이 삐뚤어지지 않았는지, 성경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이런 점들을 살펴보고 우리의 믿음을 진실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오랬 동안이나 아니면 이제 시작하든지 믿음을 가졌는데 그 믿음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면 불행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거짓이 되어 있고, 우리는 거짓을 만들어내며, 우리에게 오는 모든 지식조차도 왜곡된 거짓 지식만을 가지고 있으며, 실지로 지극히 무가치한 삶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우리의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스스로 믿는 다고 주장하는 여러분 자신의 그 믿음이 과연 진실한 것인지 살펴보라고 권합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인 사람이 인식하고 활동하는 구조적인 기능을 살펴 볼 때 현재 타락한 상태로는 결코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증거하고 있고, 수많은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사람들의 믿음이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드러낸 반응을 볼 때 믿음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지로 그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 아닌 것을 드러낸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를 앞선 허다한 사람들 가운데 믿음을 가졌다고 하지만 그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우리의 믿음이 거짓된 신앙을 가진 선대 조상들과의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믿음의 본질에 관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조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을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지으셨습니다.
영혼으로는 지성을 육체로는 모든 외부와의 객체에 대한 감각을 갖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 할때는 육체와 영혼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영혼만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육체만을 사람이라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일 때는 반드시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조는 사람은 육체의 감각을 가지지 않으면 영혼에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수 없고, 영혼이 지식을 생성하지 않으면 자기 행동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데 지식은 결코 자연적으로나 스스로 생성하지 못합니다.
지식의 역할과 기능에 관하여 알면 사람이라는 피조물의 정체를 알 수 있고, 사람과 지식과의 관계도 알게 되며, 행동하는 사람의 평가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올바른 행동을 합니다.
영혼의 지성에 거짓되고 왜곡된 지식이 가득 있는 사람은 거짓되고 왜곡된 행동만 하게 됩니다.
이타적이거나 이기적인 것은 성격은 영혼 안에 있는 지식이 결정짓습니다.
모든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에 지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고, 거짓되고 왜곡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향하여 거짓의 자녀라고 말하셨습니다.(요8:44)
다시 한번 가인을 살펴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으로부터 경고의 말씀도 들었고,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중심으로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기 안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영혼에 새겨야할 중요한 지식은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요8:44)”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원인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요: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인이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하고 제 멋대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인 안에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믿는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에 먼저 복음에 관한 지식이 들어와서 우리 안에 그 진리의 복음대로 지식이 생성되어지고 그 지식 조명을 받아야만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믿음대로 살지 못하면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하고, 어떤 믿음도 진리로 말하는 믿음과 구별없이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복음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지고 그 복음에 관한 분명한 지식으로 가진 상태에서 그 복음의 중심으로 사람이 행동되어져서, 복음의 사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지 않은 상태로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모든 믿음은 참 믿음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고 그 말씀의 사람으로 거듭났는지 다시 번 확인해야 합니다.
옛 사람은 옛 말씀의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옛 지식들을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지적인 동의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참된 의식을 결코 가지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동의하지 않고 단순히 감정적인 감동만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에 관하여 살펴 볼 차례입니다.
다음시간에 한번 더 그리스도로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은혜를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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