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3. (롬4:16)

생명있는 신앙 2014. 10. 26. 01:03

하나님의 선에는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현재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예정이라 할 때, 시간의 관점을 과거로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설계하시며 아담 안에서 태어날 많은 사람들을 작정하시고 계획하시는 그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의 지성은 예정을 말할 때 마다 오늘 우리에게 드러난 모든 것에 대해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오늘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설계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따른 뜻하지 않은 일들이 나타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세상이나 오늘 우리의 삶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따른 뜻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 문장은 하나의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문장을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게 동일하게 듣고 말하지만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릅니다. 곧 이 문장에는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완벽한 문자주의적인 해석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문장을 문자 그대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가을아침 해가 온 세상을 밝혀주기 전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이나,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이는 한 낮을 지나는 대지 위에 심겨진 나무에 달린 과일이 푸르게 익어가고 있을 때 나무에서 떨어지는 형형색색이 옷을 갈아입은 나뭇잎 하나도 하나님께서 그날 그 시에 떨어지게 했기 때문에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환경이 파괴되고 온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차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정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무엇을 의지하여야 마음에 흔들리지 않은 중심을 세우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영광을 노래할 수 있을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는 영혼에 돌파구 없는 혼란의 수레바퀴 속으로 우리가 가두어짐으로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을 온전히 인식하도록 허락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모습에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영혼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시간 속에 오시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미 온 세상에 되어질 일들을 예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때가되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을 확정하신대로 행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때에 이르러 예수께서는 오셨고 온 세상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분명히 드러나셨던 것입니다. 이것 역시도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드러난 일들이고 이 사역으로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 안에 오신 하나님에 대해서 매우 우매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우리에게 완전하게 계시하셨습니다.

삼위일체란 각 위에 각각의 인격을 가진 하나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정체에 관한 말입니다.

삼위일체는 실지로 사람 영혼의 지성이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할 수 있는 정의된 지식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언어 자체가 피조물인 사람의 지식체계에서 표현되는 단어가 아닙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것을 말하는 사람을 보시고 놀라시고 매우 만족해하실 것입니다. 게다가 이방인이 이것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놀라시며 당신의 지으신 사람을 기뻐하실 것입니다왜냐하면 피조물인 사람은 당신을 이해하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지식이 그들의 영혼에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어떤이가 삼위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설명하려들거나 그것을 말하려고 안간힘을 써서 설명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설명을 들으시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참 수고했다

그러나 너는 너와 나 사이에 꼭 하나 다른 것이 지식인데, 그 사실을 네가 아직 모르고 설명할 수 없는 주제를 설명하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다 하실 것입니다.”

앞에서도 여러번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께 있는 지식,” “하나님으로 부터 발하여진 직접적인 말씀은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된 사람의 지식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 말씀과 지식을 받아 영혼이 지성으로부터 자기지식을 생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한 진리로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지 않습니다. 반면 사람의 지식은 모든 지식에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고 있습니다또한 완전한 진리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한 전지하심과 전능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반면 사람의 지식은 비록 타락하지 않은 완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조적인 능력은 없고, 타락 이후에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함으로 완전하지 않으며 진리가 아닌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불완전에 빠진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정의한다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분명히 확인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과 영원 전 부터 함께하신 분이 피조물인 사람의 옷을 입으시고 시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

예수께서 시간 속에 오셨고 사람의 옷을 입으셨을 지라도 분명히 삼위 하나님의 한 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혼의 지성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그 지식은 완전하여 무지와 결함이 전혀 함의 되지 않은 생명의 진리의 지식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살아 운동력이 있고 그 말씀은 천지를 불러일으키는 생명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선언하셨으며, 내가 들리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이 일을 예정하신 하나님이 때가 차매 그리스도로 오셔서 그 예정하신 일을 행하시는 데 그것이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문자적인 의미로 보고 완전한 예정을 주장하는 생각들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의 사역은 이미 예정되고 작정되어진 설계도에 따라 행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 지식은 각각의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모순된 생각인 것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바울 사도가 선언한 이 말씀을 삼위 하나님의 인격에 맞추어 생각할 때 과거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은 당신안에 한 위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서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의논하시고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하여 결정하기를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으로 일임하시고 그렇게 정하신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 일을 실행할 때에는 철저히 선을 원칙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슬그머니 이 의견에 끼어들어 인간의 결단과 공로를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사도행전에서의 말을 근거로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그 사람의 열심과 노력과 믿음에 대한 결단에 의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은 시간에 속하지 않은 완전한 체계로 계시지만 시간에 나타나셔서 시간에 따라 사역을 하십니다. 그 절차는 사도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철저히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복음이 있는 곳에 삼위 하나님 가운데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 역사는 순전히 선에 중심하여 복음이 귀를 통하여 영혼의 지성에 들려지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선택함을 받는데 그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동일한 현상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분명히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의 아들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시고 가나안으로 이끌어 가신 것처럼, 오늘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성령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을 영원한 믿음의 후손으로 부르시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나 결단, 혹은 결심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의 지식이 사람의 영혼에 들어와 심겨질 때 성령의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 성령께서 복음을 조명하셔서 그 복음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가져 지각하여 반응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만이 구원의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철저히 선의 원칙에 의해 구원으로 선택하시고 어떤 이는 동일한 복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면하는 결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안에서라는 예정에 속한 말은 오늘날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성도 개개인의 예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시간 속에 나타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정은 "하나님의 선에 따른 성령의 사력으로 인한 선택"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선택이 비록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주된 일이지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직접적인 선택만은 성령의 사역에 의존하시는 것입니다.

사도가 아브라함을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의미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