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4(롬4:16)

생명있는 신앙 2014. 10. 27. 08: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에게는 개개인의 예정이라는 말은 가장 정확한 진리의 말입니다. 칼빈은 그의 영원한 작정에서 성도 개개인의 예정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작정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같은 상태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을, 다른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예정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예정의 확증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있어서 성도 개개인의 예정에 관한 교리를 선택으로부터라고 했고 이 선택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칼빈의 영원한 작정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 되었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을 선택되었으며 이 사랑과 선택의 근거는 영원한 예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지로 이 말은 이성경의 교리와 다른 주장을 펼쳐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을 낸다고 하는 자들의 궁극적인 하나님을 향한 공격에 아주 좋은 빌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삭만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마엘도 예정하셨습니다. 이삭만 사람이 아니라 이스마엘도 사람입니다. 그도 아브라함의 아들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께서만 가진 어떤 일방적인 의미에서 행하신 절대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삭이나 이스마엘이나 동일합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의 존재를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실 때 그 계획이 확정되어지도록 결정하신 것을 영원하신 작정이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이 작정 안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존재하게하신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들이 범죄 함으로 정욕을 일으켜 계획되지 않은 이들이 죄의 결과로 태어나게 될 것을 아시고 그들의 존재를 허락하시는 이 두 가지의 계획을 동시에 확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계획도 영원하신 작정이라면, 허락 또한 영원하신 작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두 작정은 하나의 영원하신 작정이지만 실지로 그 내용은 구별됩니다. 창조 계획에 속한 작정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라면, 피조된 결과물들의 행위에 의해 드러난 결과적인 열매에 대한 작정은 허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가 어떤 행위에 의해 결과를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서 미리 아시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피조세계 안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들이 어떤 행위로 인하여 결과물들을 드러내는 그것을 허락하심으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만약 그 허락이 없다면 피조물은 자신들의 행위에 의한 결과물들을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단순이 존재를 허락한 결과들에 의한 세계를 구성할 뿐, 허락에 의한 결과물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조 계획의 작정과 그러나 창조계획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의 인격으로 행한 결과들을 허락하심으로 그 영원하신 작정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만약 타락한 사람들의 개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작정하신 것이 허락이 아니라면, 아담에게 드러난 죄의 결과는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으로 말미암은 것이 되기 때문에 죄의 원인과 결과가 하나님께 있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선택과 예정교리는 필연적으로 이런 혼란은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리를 반대하는 교리들이 성경의 근거들을 들고 나타났고 교회는 이들의 외침 때문에 영혼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고, 그 결과 세상에는 진리와 상반된 교회가 나타나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진실된 하나님의 교회를 혼탁스럽게 하여 결국은 교회 전체가 커다란 오류 속에 파묻히게 된 것입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래의 정욕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근본이 생식의 본능에 의한 정욕을 이용하지만 실지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하여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창세전에 영원한 작정으로 계획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삭에게 정욕이 개입하여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한 태에서 서로 다른 두 아들이 탄생하였는데 하나님은 이들이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구별하여 하나는 선택받은 아들이되고 다른 하나는 버림을 받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들어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반드시 이런한 절대적인 순종만을 강조하지 않고 이 절대적인 주권이 객관적으로 합당한 요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행위를 하나님만이 가지는 절대적인 자유를 기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객관적인 충분한 근거에 입각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절대적 권위를 내세우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신도 스스로 따르는 원칙 곧 선입니다.

앞에서도 분명히 말했지만 하나님은 이 선의 원칙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의 아들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심에는 하나님의 선에 입각하여 조금도 흠이 없는 영원한 결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그것은 질서로움과 조화로움을 말합니다.

이 선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는 것을 객관적으로 정당화시키는데 전혀 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