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자(롬4:16)

생명있는 신앙 2014. 10. 30. 07:40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

 

하나님의 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창조사역의 원칙으로 스스로 확정하신 마음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을 지배하는 어떤 힘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생각들은 이것을 빌미로 선을 하나님보다 높여 하나님의 영광을 멸시한다고 입에 침을 토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다짐하시는 원칙이지 어떤 권위를 가진 것이고 하나님위에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지로 이 선의 원칙에 가장 명확하게 적용하시며 피조세계를 보존하시는 분은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모든 일을 자의로 행하시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을 행하시므로 순종하시는 것처럼(12:49) 성령 하나님도 자의로 말하시지 않으시고(16:13) 들은대로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관하여 개혁교회가 정의하는 내용에 따라 사람에게 나타난 믿음에 관하여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창세기 15장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믿음을 가지는 구체적인 성령의 작용에 관하여도 하나님의 선의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적용하시는 하나님은 성령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소명이 그의 육체의 감각으로 인식되게하는 것이 바로 귀에 들려지게 하는 것입니다. 

갈대아인의 우르에 데라의 아들로 거하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했습니다.

이때 아브람이었고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그의 육체의 감각을 통해 들었습니다. 이것이 환상 중에 들린 것인지 아니면 실제 하늘이 열린 상태에서 아브람에게 들렸는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브람의 육체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분명히 들려졌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이 말씀에 사로잡혀 있었고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 그에게 일어났으며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자기의 분깃을 받아 집을 떠나 새로운 부족을 세우고 독립하였습니다. 

그가 가는 길은 험난하고 고통스런 삶이 앞에 기다리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의해 그가 분명히 감각으로 들었던 말씀에 의지하여 나간 것입니다.

이때 아브람의 영혼의 지성에서는 이 말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구체적이지 않고 인식할 수 있는 근거도 없는 아주 일방적인 말씀입니다.

귀로 들린 감각된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인식되지 않고 인식할 수도 없는 일방적인 말씀인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으로는 실지로 전혀 가능성이 없는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일반 사람으로서는 충분히 무관심으로 치부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일 뿐입니다. 이유는 실체가 없는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소명에 관한 말씀을 여러분이 직접 경험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요?

사람마다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종교적인 경향이 강한 사람은 신비한 사건으로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고 그 경험의 결과가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을 기다릴 것입니다. 반면 지적인 사람은 그 말씀을 자기의 지식으로 판단하여 전후좌우를 살핀 후 진의를 파악한 다음 발하여진 음성의 정체를 찾는 다는가 아니면 그 의미의 논리적인 내용들을 면밀히 생각하여 자기에게 적용이 되는지를 파악하고 대부분 무시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들려 경험되어진 사실에 대해서 일체 관심을 갖지 않고 흘러 버릴 것입니다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확실히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는 하나님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선재하는 지식이 타락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안에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지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안에 표상으로 감각되었을 때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인식할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의 모든 삶을 내어놓고 따르게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앞에서 말한대로 타락한 사람의 본질을 염두에 두지 않고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아브람의 공로를 드러내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지라도 순종 여부가 사람에게 있는 것이라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충분히 부정적인 의미만을 남기게 될 이 공로에 관한 것을 아브라함에게 돌립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여부는 사람의 결단에 달린 것이 되고, 사람이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사람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해석을 하는 우를 결코 범해서는 안 됩니다.(놀랍게도 현대 교회는 대부분 사람의 결단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쪽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따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에 의한 것입니다. 

아직 아브람의 영혼의 지성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각되도록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을 지라도 아브람은 그 말씀을 자기의 지식으로 이해하여 그 말씀의 의미를 왜곡 시켜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의 가족을 통해 부족을 이루시고 나라를 세우시려는 뜻을 펼치시는데 사람이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함으로 성취가 불투명해질 수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사역을 효과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나도록 하시기 위해 성령의 강권적인 개입이 요구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가족을 떠나 독립하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람은 이 말씀의 의미를 자기의 지식으로 자의로 해석하여 필연적으로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브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강권적으로 적용시켜 그 말씀이 아브람에게 적용되어 행동하게 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행동은 아브람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성령의 붙잡힘에 의한 행동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용기를 가지고 아버지 데라에게 자기의 분깃을 요구하여 집을 떠나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두렵고 힘든 어려운 여행을 감행하여 마침내 가나안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믿음에 이르는 삶을 얻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이끄심이 절대적인 요건이 됩니다.

사도가 말한 아브람의 믿음에 속한자?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

분명히 말하자면 여러분은 창세전에 계획에 의해 작정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칼빈이 말하는 영원한 작정과는 의미가 다른 말입니다. (제가 이 말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칼빈이 말하는 영원한 작정은 이미라고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곧 시간적으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즉,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 분명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한 시점은 아브라함으로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전에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을 부르시는 소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리스도 이후 지금 온 세상에는 성령께서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시키는 것 같이 직접 복음을 적용시키는 사역이 진행중 입니다.

예전에는 아브람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려 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선을 원칙으로 하는 성령의 사역이 지금 온 세상에 아직도 진행하시면서 오늘 하나님의 아들에 속한 사람에게 다가가고 계십니다.

그 걸음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손에 복음을 들고 당신이 사랑하는 영혼에게 던져주시고 그 영혼을 사로 잡으시려고 지금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역을 못하시게 했고, 우리스스로 성령의 사역을 부정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땅에 묻어버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일어날 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일어나 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때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어떻게 대하는 지 아실 것입니다. 세상은 아니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십시요. 우리는 예수를 넘 미워하여 잔인 그 이상으로 대했고 십자가에 못을 박을 때 조금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고, 그가 죽어가는데 저항하지 않고 같이 죽였습니다. 

우리 지금 결심하십시다.

일어나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나아갑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을 본받아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나타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을 향하여 행한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그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사는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