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5 (롬4:16)

생명있는 신앙 2014. 10. 29. 07:54

아브라함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실 때, 좋은 것, 이것이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은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나왔으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질서대로 조화롭게 유지 되었습니다.

질서롭다는 것은 순서에 따르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질서라는 말은 매우 안정적인 말로서, 순서, 차등, 그리고 정확한 자기의 위치 등을 드러내는 이 말로 최초 지음을 받은 만물이 질서에 따라 매우 안정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질서는 정신적인 것,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지적영역에 까지 매우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선은 질서로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움이 함께 어우러진 상태를 말합니다.

조화로움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은 서로 잘 어울려 모순이나 어긋남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이 질서롭고 조화롭다라고 했으니 이는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물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에서 나왔고, 하나님의 지식은 진리이며, 지혜는 선한 진리에서 나오는 에너지 같은 것입니다.

잠언 기자 솔로몬은 무엇보다 지혜를 구하라고 말했고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더니 자기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에 관한 로마서 416절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이방인 중에서 누가 아브라함의 후손 인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칼빈의 이중 예정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으로부터 선택과 유기를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은 하나의 태에서 나온 쌍둥이 이지만, 칼빈의 입장에서 볼 때 영원 전에 이를 작정하신 이중 예정입니다. 만약 이를 예지 예정에서 본다면 결과론적으로 이들이 각기 자기들의 삶을 살 것을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태어나게 했더니, 각기 서로 다른 자기들의 삶을 살게 되었고,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었고, 오직 그들의 삶의 결과에 따라 예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구원을 받은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완전한 자유이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예지 예정은 결과적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가져옵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믿음은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풍선을 하늘에 띄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구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 사람들은 그 풍선이 주는 구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기의 힘과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실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행동의 주체가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에 행동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점에서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조화롭지 못한 신학적인 큰 혼란이 야기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 능력으로 받아들이는 결과적인 정체성에 관하여 사람의 선악의 상태에 관한 혼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자기의 지식과 지혜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그것을 사람의 주권에 두신 것으로 보는 이 이론은 사람의 전적인 타락, 곧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철저히 부숴지고 망가진 존재라는 점을 거부하는 부분 타락을 주장하는 이론에서 온 이 주장이야 말로 교묘하게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의 지식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이단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서 오는 결과적 이스마엘인지, 하나님의 열심으로 말미암은 결과인 이식인지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선은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미 결과를 말하는 성경을 수없이 많이 읽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연관성에 대해서 아주 잘 알 것입니다.

곧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서 비롯된 정욕의 아들입니다. 실지로 이스마엘은 사라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없었다면 낳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사라가 자기의 생각에서 확신한 결과입니다.

그의 지성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 자신으로부터는 도무지 그 약속을 성취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생산능력이 이미 사라졌고, 도저히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몸종을 아브람에게 주어 자식을 낳게하고, 그 아들이 아브람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라면 그를 약속하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일이 자기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그 어떤 능력으로 할 수 있을 때 믿음도 함께 드러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음은 사람의 지식의 도움을 받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지식이 사람의 영혼에서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선은 질서로움과 조화로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아들에 관하여 사라의 생각에 개입하여 아들을 얻도록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계획한 아들을 아브람에게 보내실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지식으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하나님의 선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사람의 지식으로 말미암은 열심에서 나온 결과에 결코 적용되어질 수 없습니다. 결함을 가지고 타락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아브람이 사라의 몸종에게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은 분명히 아브람의 혈육입이다. 서자 적자를 구별하는 것은 법적인 것 뿐이고 실질적으로 이스마엘은 확실히 아브람의 혈육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것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열심에서 비롯된 결과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이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시나요?

이스마엘이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얼마나 열심을 내었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거룩하게 열정적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자기들의 하나님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모하멧이라는 선지자를 받아들이고 인정했고, 이스라엘은 그 무엇보다 율법을 자기들의 모든 삶의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어떻습니까?

많은 교회들은 매주일 설교시마다 지금의 교회가 위기이고 많은 교회가 세속화되었다고 침을 토하고 자칭하여 자기들이 참되고 진실한 교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들의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주장할 지라도 놀랍게도 그것은 사라의 열심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사람의 노력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열심이 결과에만 적용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교회의 분질에 관하여 로마서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고 그 결과적인 교회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에서와 야곱

 

나아가 하나님의 열심의 결과인 이삭으로부터 낳은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하나의 태에서 서로 다른 두 민족이 나뉘어지는데 그들이 선과 악을 행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선택이 부여되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보게됩니다.

리브가가 아직 아들을 낳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나타나셔서 두 아들의 운명에 관하여 분명히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 안에서 이미 정해져 있었고 하나는 미워함을 받고 다른 하나는 은혜를 받은 하나님 아들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 운명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선을 적용하여야 합니다.

두아들이 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택할까 저를 택할까 하고 고민하시다 마침내 동생 야곱을 택하셨습니까?

그렇게 택함을 받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적용되어지고 그의 삶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을 직접 적용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선입니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정당화하시기 위해 두신 규칙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행위가 자기의 주관적 판단에 옳고 그름을 규정하는 불합리함을 철저히 배제하시기 위해 스스로 선을 두셨고, 그 선에 의해 사역과 행위를 드러내십니다.

 선에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주도적으로 행하시고 아들 하나님은 이를 실행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온전히 적용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아버지는 계획하시고 아들은 실행하시고 성령께서는 보호 보존하신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사역이 하나님의 선에 원칙하여 행하여 진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의 하나의 생식 행위에서 에서와 야곱이라는 두 가지의 결과를 보았습니다. 야곱은 반드시 이 세상에 태어나야 하는 아담 안에 계획된 아들인 반면, 에서는 반드시 낳아야 하는 아들이 아니라 덧 뿌려진 씨앗과 같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태어날 것을 이미 아셨지만 그를 뽑아내지 않으시고 낳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모든 교회들에서 교회의 타락의 위기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운 외침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도 교회를 향한 비난과 질타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런 교회가 자기자신을 자정하고 개혁하여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는 이미 사라의 열심을 이어받아 이스마엘을 양산했기 때문에 그들이 자기자신을 개혁하자는 목소리는 높이지만 이로인하여 세상에 나온 또하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양자된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 그루터기는 남아있지만 그들조차 세속화된 이스마엘 교회에 함께 휩쓸려 그루터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루터기가 반드시 양자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하나님의 교회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가 하나님의 선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사역의 결과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마치 불가능한 사라의 몸속에서 이삭이 나오는 것 같이 도저히 하나님의 교회를 새롭게 할 능력이 없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