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롬5:2)

생명있는 신앙 2014. 12. 18. 03:13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사도는 영원한 저주의 운명을 앉고 이 세상에 온 불쌍한 우리의 인생에게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의 세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은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은혜의 세계에 들어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이를 마련해주시고 이끌어 들이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믿음은 우리의 영혼의 지식에서 나온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앞에서 결론으로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에서 또다시 반복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는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함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아브라함이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으니라”(4:2~3)라고 한 것은 자기의 행위로 의를 드러내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롭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행위는 영혼의 지성이 자기 지식으로 지각된 것을 행위로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지성이 지각하지 않은 행위는 감정적이거나 아니면 다른 존재에 사로잡혀 점령을 당하여 행동되어지는 것입니다.

믿으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향하여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아브람의 영혼에 밀려들어옴으로 받아들인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받아들인다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의미는 믿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건이므로 신학을 하는 사람이나 신앙인들은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람이 믿으매라는 인정을 받기 까지 처음 소명을 받은 때로부터 가나안에서 애굽을 거쳐 다시 가나안에 이르러 정착한 후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가나안에 정착해 있던 어느 시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대면하셨고 아브람으로부터 믿음을 보셨던 창세기 15장의 때는 소명 후 약 10여년이 흘렀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으나, 아브람은 그 모든 말씀을 자기 영혼의 지식으로 이해하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에 대한 행위는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기지식으로 이해하고 판단한 행위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이 자기지식으로 해석하여 행한 것이 됩니다.

이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고 타락하여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으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지라도 그 행위는 거짓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아들 가인에게서 명확하게 나타났고, 아브라함이 믿음을 갖지 이전과 그 이후에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말씀하여졌을 때, 사람이 그 말씀을 받고 자기 영혼의 지성에 있는 지식으로 조명하여 이해하거나 지각되지 않은 채로 영혼의 지성에 새겨지고 그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서 작용하여 사람으로 행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행위로 드러나게 작용하는 것이므로 쉽게 말하면 말씀에 의해 이끌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행위를 드러내는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람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은 곧 성령께서 이끄신는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볼 때 믿음은 자기의 지식의 지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행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진리대로 지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들은 말씀을 자기의 지식으로 이해하였고 그 말씀의 의미를 자기중심으로 판단하여 집을 나와 독립하여 가나안땅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처음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로 부터 독립하였을 때,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르려고 결심하여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본래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있던 데라가 아브람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때 아브람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칠 때 이해하는 하나님과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소명을 주셨을 때 그의 영혼에는 왜곡되고 타락된 무지와 결함을 가진 지식만 있고, 진리의 지식은 전무한 상태이며, 하나님에 관하여도 지식이 없었으므로 당시 누구나 가진 다신교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말하여짐으로 그의 영혼의 지성에 들어왔으나 지성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자기가 가진 자기지식으로 자기에게 말씀하신 신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이웃에게 말하면, 불신자 이웃은 그 복음이 자기에게 어떤 것인지 그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영혼에 우리가 전한 복음을 이해할 지식이 없기 때문에 복음을 깊이 생각하여 이해해도 왜곡되게 판단할 뿐입니다.

우리도 본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도 모르고, 복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전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에게 말하여 졌고, 우리는 이웃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데라의 집에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는 한사람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으나 이제는 복음으로 온 세계인에게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아도 사람들의 영혼의 지성에 두신 말씀들이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영혼의 지성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은 그 말을 하는 그 사람의 말과 그 사람의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아브람이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당시 종교적 지식에 의해 다신론적인 의식으로부터 자기에게 말씀하신 신을 이해한 것과 같이 우리나 우리의 불신자 이웃들이 전하는 복음을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전하는 그 사람의 지식이나 말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이 자기의 지성에 새겨지고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의롭다 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살펴도 믿음은 우리의 지성이 가진 지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의 영혼에 심겨지고 우리의 영혼으로 지각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의 본성이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행하게 하는 것이므로 성령의 사역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 우리에게 죽음을 당하시고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사람이 자기지식으로 이해하여 드러나는 행위와 복음이 그 사람의 영혼에 심겨지므로 그 복음에 의하여 지각되어 나타나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를 복음으로 말미암은 열심에서 비롯된 것인데 전자는 자기의 열심이, 후자는 복음의 주체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령의 열심이 교회에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아브람의 삶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마음에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자기 아내 사라에게 말하였습니다.

사라는 아브람이 자기에게 말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그 약속을 받아들이기에 적절한 상태가 아닙니다.

그 약속은 아브람의 몸에서 후사를 얻을 것이고 그 후사로 인하여 하늘의 뭇별과 같은 수많은 백성이 자손으로 번성할 것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람의 말에 사라가 받아들인 것은 후사아브람을 통해서 낳을 아들입니다.

사라는 현재 자기의 상태에서는 이 약속을 성취시킬 수 없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미 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라는 아브람의 이 말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라는 것을 믿지만 그 말씀을 자기의 상황과 환경, 그리고 상태에 따라 이해하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만난 하나님은 자신에게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고 있다고 믿었고, 자기의 몸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후사를 얻는 신에 대한 자기의 희생의 봉사를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갸륵한 희생이고 봉사입니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이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이해한 것이고 아브람도 못마땅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하고 동의하여 엄청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불가능하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서 후사를 잇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과 사래라는 두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증거로 우리 안에 일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 심겨지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이끄시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까지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사도가 말하는 믿음으로 서 있다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행하심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으로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혼에 있게 하셨으나 지금은 말씀이신 성령께서 직접 이방인의 영혼에도 복음으로 함께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우리를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새겨진 복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누리고 사는 것, 이것이 은혜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