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며3(롬5:3)

생명있는 신앙 2015. 2. 23. 07:47

이것이 신자들의 삶의 형태가 자연인들의 삶의 형태와 다르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앞에 나와서 우리를 대할 때 항상 우리의 정체를 먼저 파악합니다. 

우리가 누군가

사도의 사고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의 아들과 종의 들이 구별되어 있듯이, 성경도  부류의 사람을 명확히 구별하여 적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  유대인들의 사상에서는 선민과 유기된 민족으로 구별되고,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구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약속, 선택이라는 관계를 맺으셨으나, 이방인들을 어떤 관계를 맺지도 않았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이스라엘에게 보내주셨건만 그들은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내어주어 죽게 함으로 하나님을 거절하는 죄의  절정을 증언하고, 이방인은 자기에게 넘겨온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으로 하나님과 피조세계 사이에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을 가질  없는 참담한 상태에 빠져버린 절망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고 이전 세상과 구별하여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을 증언하심으로 그리스도 죽으심 이전에 이스라엘과 이방의 구별을 신자와 불신자로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이 없다면 창조와 타락과 죽음으로 끝난 성경의 증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복음으로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주는 의미를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파악할  있는 시야를 우리의 영혼에 주어져 인식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명확한 구별이고  구별은 오늘 우리 피조물에게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므로 교회와 세상이라는 분명한 구별 앞에 우리가 놓여있는 사실을   있는 것입니다. 

객관적 시각에서 피조세계를 볼 때 분명히 차별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이었으나 이제는 교회와 세상, 분명하게 신자와 비신자로 구별되고 있습니다. 

신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하고,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 구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오늘날 사람들을 차별하시고 계십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

아무리 이를 부인하려고 해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차별을 해소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우하시는 것에 관하여 명확하게 말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할지라도 피조물을 불평등하게 차별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옳지  하시다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옳지 못한 선하지 않은 일도 행하신다고 항변하는 것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인일지라도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시는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피조물들을 불평등 차별이라는 부당한 처우로 대하시지 마시고 평등하게 모든 사람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는 평화를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18세기까지 이단으로 낙인찍혔던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말에 이구동성으로 환영하고 나설 것입니다. 

맞습니다. 믿음을 우리의 결단에 두시지 마시고 모두  믿게 해버리세요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지금  순간에  믿게 해버리시고 세상에 차별을 두지 마세요 라고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부터  세상이 들어온 죄의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는 엄청난 신학적 회오리를 불러 일으킬 것은 자명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누누이 언급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하시며 유일하신 독생하신 분이시며 우주를 존재하게하신 만유의 창조주 이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판단한  어떤 것도 없는 유일하신  분이시지만 스스로 당신의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맡기시고  판단에 따르신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것은 선이고 선은 하나님의 행위를 판단하는 유일한 Canon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시는  어떤 행위도 선에 비추어 적합하게 행하십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행하시는 일을 객관적인 판단에 결함이 없도록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에 부합하지 않은 일을 결코 하실  없으며 안하시고, 오직 선에 합당한 일만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질서로움과 조화로움입니다. 

저는  말을 여러분에게 드릴 때마다 가슴이 떨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시라도 자기의 행위를 선에 기준하여 행하시는데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기준하는  어떤 것도 가지지 않은 무맹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차별하시는 것과 하나님의 선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관하여 하나님과 관계하여 살펴 보려고 하면 언제나 둘러 비치는 복음을 볼수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있는 유일한 Canon입니다. 

복음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여 이방인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이방인은 자기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잔인하게 십자가에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고,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다른 하나는 이방인입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방인입니다. 

사도는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방인인 우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은 자들이라.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1~12) 라고 했습니다. 

 말하는지 아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행운이면서 반대로 엄청난 불행을 앉고 태어났습니다. 

사실 이방인인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없었습니다. 

다만 계획에 의해 지음을 받은 아담의 후손들이 범죄하여 정욕을 일으키므로 잉태되어 태어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계획된 사람들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전히 정욕의 열매이며 죄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앞에  때마다 우리의 정체성으로 인하여 저주에서 돌이키는 방법을 듣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부인할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방인을 대우하시는 것은 결코 질서롭거나 조화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존재하도록 계획한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이하 하나님의 아들이라함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없는 죄의 열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사역을 하시는 것은 선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마약 사역을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이 되는 선을 위배하심으로 하나님의 독선을 피할  없고 하나님의 편애를 피할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신자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이방인과 불신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편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의 원칙 때문에 결코 하실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환란의 본질을 향하여 한발 한발 접근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환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할 단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확인  사도의 사고에 접근하기 까지 매우  길이 요구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길을 단축하여 곧바로 환란에 관하여 언급하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