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환난은 인내를 4(롬5:3)

생명있는 신앙 2015. 3. 12. 06:06

하나님의 창조에는 환난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환난은 지음을 받은 존재가 스스로 유지를 위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작용과 반응을 상대적인 존재들에게 미치고 이를 감정으로 느낄 때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감정은 두려움, 위기감, 어려움, 혹은 생명의 위협입니다

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게 되었는데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에서도  즐거워 하는 삶을 살수 있게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환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말미암은 세상의 반응입니다. 

세상에는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하나님 아들들에게 주어진 터전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만들고 건설할 것입니다

보이는 물질적 세상 분만 아니라 보이지 않은 영적인 세상까지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 세워지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지식을 가지지 않고 감정으로만 살아가는 짐승들도  이상 모이면 사회 구성하고  사회를 세상에 드러내며 그들의 존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수 있도록 합니다. 사람도  이상이 모이면 사회가 되고  사회가 선한 상태인지 악한 상태인지는 객관적인 판단을 받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 세계에서 짐승들이나 미물들에게는 자기들의 사회가 객관적인 판단을 받는 지적인 감각을 갖지 않습니다. 다시말하면 자기들의 사회가 객관적인 다른 존재나 상대들에게 선한사회인지 악한 사회인지 판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사회가 선과 악의 어느 하나에 속한다는 것을 인지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사회적인 반응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가짐으로 상대적인 사회적 반응이 환난으로 다가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에서 믿음이라는 새로운 사회가 둥지를 틀고 자리는 잡으려고 하는데 이를 반가워하지 않은 세상이 믿음의 사회를 핍박하고 억압하며 괴롭힘으로 자연적인 환난이 다가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사회가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도록 핍박하여 환난을 겪게 하는 것입니까

믿음은 반드시 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로마서를 계속해서 살펴보면서 창조시 계획에 의해 존재하도록 지음을 받은 계획에 속한 아들과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악한 행위로 존재 되게한 죄의 결과적 존재들로 구별되어 있음을 인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피조세계에서 사람의 세계를 지으셨으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유롭게 됨으로  하나의 사회가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라는 피조물들의 공통적 사회에 사람의  다른 사회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경계와 반응으로  나타나는 결과적인 압력이 새로운 사회에 속한 사람에게는 핍박과 환난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의 사회를 향하여 이미 존재한 기존의 세력들의 반발과 핍박 그리고 억압으로 말미암은 고통이 있을 지라도 이를 기꺼이 즐거워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의 사회가 세상 사회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존재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본래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으나 따로 불러내어짐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불러냄을 받은 것은 동일한 목적 하에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불러내 자기들과 같이 되게하는 것 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자기들과 같이 변화시키는 목적으로 불리어진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세상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자기의 존재가 점령당하게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자기 보호의 본능에서 비롯된 반응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적대시하게됩니다.  

명확하게 드러나 보이는  사회는  세상과 그리스도를 믿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사회는 충돌하고 점령하려는 쪽과 방어하려는 쪽으로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결과적 존재들의 구별이고   구별로 인한 존재들의 대립에서 오는 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말  것도 없이 죄로 말미암은 결과적 존재 인데 반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사도는 분명히 두부류 안에서 충돌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말미암은 환난을 말하고 있다면 자신은 어느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로마인들을 어떤 정체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사도는 자신과 로마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속한 회심한 사람들로 말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사람을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아들1:11)이라 칭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의 대립과 충돌로 말미암은 환난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인의 충돌로 보여집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아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사도의 말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인의 충돌   대립으로 인한 갈등  

그리스도인의 사회는 믿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믿음이 없이는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아들이   없습니다. 

사도는 이방에 속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시고 존재를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믿음에 들어오도록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믿음의 세계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구성의 시각으로볼 때 믿음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회에 악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빼앗아가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충돌을 피할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세상 조직의 구성인 사회로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세상은 사도 바울이 점령하려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사회가 아니라 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어떤 말로 접근하든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제 우리 영혼의 지성을 조명하시는 성령에 의하여 구체적인 원인과 해답을 알게됩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세상에 속하였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인들로 양분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고 내쳤습니다. 예수께서도 친히 이스라엘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셨다고 15:24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내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함께 공모하여 죽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가 5:10,  1:21에서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한 것과 같이 죄를 범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들의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방인들이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원수로 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