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환난은 인내를 5(롬5:3)

생명있는 신앙 2015. 3. 14. 06:34

결국 우리는 존재를 통하여 인식된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이방인 사이에 관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답을 찾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이에서 환난은 문제를 발생하는 원인자와 직접 관계에 속한 환난을 당하는 ,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시려는 하나님으로 집약되어지고 모든 원인과 해답이 여기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복음은 아래 그림과 같은 삼각 관계로 표현할  있습니다. 

 

 관계가 이방인인 우리에게 보여지는 메시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매우 비관적인 것이라는 답변 뿐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창조적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 역할,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죄의 결과적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 하나님과 이방인에게서의 허용적 작정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지각하여야 하는데 무엇보다 이방인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반드시 지각되어져야 합니다. 

위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창조적 관계라고 표현하였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관계 (아들관계)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으로 말미암은 모든 사람들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시에 작정되었다는 의미로 창조적 관계라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창조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이신 하나님이 아들로 보내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이방인과의 에서는 허용적 작정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허용적 작정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어떤 원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적 사건을 허용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방인은 하나님과의 창조적 관계가 아니라면  존재는 아담 안에서 계획되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죄의 결과적 관계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것임을   있는 것입니다.이는  지음을  받은  아담이  범죄로 인하여 이방인이 잉태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아담이 죄에 대한 행위의 결과적인 열매를  드러내도록 내버려 두셨는데 그것이 허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하나님의 창조적 작정과는 전혀 관계없고 지음을 받은 최초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태어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4장에서 증거하는 가인의 출생과   하나님을 향한 대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이방인의 정체가 이처럼 분명히 보여짐으로 얼마나 비참에 처한 운명을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을 읽을  성령께서 조명하시면 우리의 존재의 상태와 하는 일을 적나라 하게 지각됩니다. 

창세기 4장의 주제는 인류의 최초의 사람이 사람을 낳았는데 그들이 가인과 아벨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가인이 아벨을 미워하여 죽이는 것, 하나님께서 아벨대신에 다른 씨인 셋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가인과 아벨에게서는  가지의 뚜렷한 구별을   있는데 가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아우 아벨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보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5) 둘 째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9) 하나님의 무소부재 하심을 모르고 있습니다.(16) 가인으로 인하여 사람의 문화와 문명이 탄생합니다. 

다음으로 가인에게서 보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살펴 보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형제입니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동일하게 지식을 얻었고 부모로 부터 같은 것을 배웠으나  사람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에 대하여 지시하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할  있을 것입니다. 또한 형에게 대항하지 않고 맞아 죽는 희생을 당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아벨은 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으로 볼 때 가인과 아벨의 다른점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으로 구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인에게서 나타나는 성품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거울처럼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사를 지시하시자  마음에 이끌리는 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차이로 말미암아 그들의 제사가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노력과 성의가 무시당하게 되자 그의 성품에서 미움과 분노와 악의가 분출되어 아벨을  죽이게 됩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결코 아벨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가인에게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에 대한 살의와 악의 미움, 분노가 용암처럼 깊숙한 곳으로부터 솟구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도 분노를 드러내는 것을   있습니다

 세상과 우리에게 있는 미움과 분노와 악의가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그것은 가인으로 부터 라고 말하는데 가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 

그의 영혼의 지성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의 지성에 있는 자기지식과 판단대로 상대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지음을 받을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식을 상실함으로 지적인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은 영혼의 지성에 자기와 상대하는 모든 존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상대하는 존재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오래전에 이미 충분히 해왔었습니다. (*죄란 무엇인가?)

가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성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셨고 그에게 경고하시며, 그를 사랑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마음대로 대우하고 범죄의 경고를 무시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놋땅으로 가서 에녹성을 쌓고 세상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가지 궁금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인은 자기가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에 대해서 본질대로 알지 못하는가

 답은 그의 영혼의 지성에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진리대로 인식할  있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질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험하는 사물을 인식하게해주는 지식이 자기의 영혼 지성에 없는 상태를 무지의 상태라고 합니다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 했을 때 사람으로 살도록 부여해주신 완전한 지식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그의 영혼의 지성이 지식이 없는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혼은 지성을 육체는 감성의 역할을 하고이 둘의 결합으로 의지가 드러나고 의지에는 마음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고 지성과 감성, 의지가 온전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구성할 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사람이 지성이 있고 생물체인 육체가 자연의 사태에 따라 반응하는 생물체로서의 작용이 일어나 감성이 작동될지라도 지성에 지식이 없으면 상대하는 객관적인 존재들을 지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별도로 부여 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의 지성에 모든 지식을 조명하여 사람으로 객관적인 지식을 가지고 지식대로 판단하고 지각하여 결국에는 행동할  있도록  것입니다. 

사람이 사물을 대면하여 접할 때, 사물들이 감각되고 지성은 감각된 사물에 대한 지식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밝혀줄 지식이 없는 상태가 무지의 상태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하였다는 말에 대해서 말도 안되는 소리다. 자기가 직접 만났는데  하나님을 모를  있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셨으나 아무도 그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성령으로가 아니면 아무도 예수를 주라 시인할 사람이 없다고전 12:3) 분명하게 말하고 또한 복음서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지식이나 논리 혹은 판단으로 발견할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깊고 오묘한 철학을 논하고 이야기 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지성에 지식의 조명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결코 하나님을 지각할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사람의 본질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하는 환난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세상의 반응에 대해서만 이해될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다른 이유에서 환난을 당한다면 그것은 양태론적인 것입니다.  삶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양태론적인 결과와 본질적인 관계에서 뚜렷한 구별을 해야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환난은 양태론적인 원인과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하나님의 아들과 이방인의 관계에서 비롯된 결과를 말합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의 결과적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방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세상은 필연적으로 천국이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인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없습니다. 

이방인은 본질상 하나님의 창조관계에 속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그들의 근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불순종의 죄이고 정욕입니다

 죄는 죄를 낳은 것이 이방인입니다. 

결국 이방인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정욕이 그들에게 일어나지 않으므로 죄의 열매를 낳을  없습니다. 

죄의 열매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결코 하나님 나라에 함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께서 거듭나야할 필요성을 말씀하셨고  방법은 물과 성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부득불 죄의 결과로 태어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없기  때문에 별도의 장소를 만들어 가두어야 했는데 그것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필수적으로 만들 수 밖에 없고  지옥이 아니면 온전한 천국은 결코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신학적인 난제들이 있으나  난제가 해답이 없이 남겨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문제들이라 할지라도 복음 안에서 충분히 이해되어 집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때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2) 말함으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구별을 받는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선택을 기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 관계와 그리고 죄의 결과적 관계라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환난의 궁극적인 원인에 대해서 접근하려고 하는데 자꾸 이방인과 이스라엘이라는 구별된 상태에 대해서 설명되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양태론적인 환난과 복음으로 인하여 당하는 환난을 구별하면서 사도가 말하는 환난이 복음적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적 환난은 어떻게 이해될 것입니까

사도가 말하는 복음은 고전 15 3~6절입니다. 

사도는  복음을  천하에 선포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사도가 말하는 복음을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접하지 않았고  아들을 이방인에게 내어주어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다시 살리시고 다시 세상에 보내셔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하셨습니다.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아는 사람을 아들로 삼으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도 외인이며 세상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고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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