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환란은 인내를7(롬5:3)

생명있는 신앙 2015. 5. 22. 02:49

그러면 거듭난 사람에게 있어서 역경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타락과 함께 그를 덮고 지배하는 죄로 말미암은 어두움과 비참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사람에게 드리워진 지옥의 형벌은 삶의  시작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안전함 삶을   없고   순간도 위기의 두려움을 벗어날  없습니다. 

시시때때로 위협하는 파멸과, 앞으로 내딛는 한발의 위험은 수많은 덧에 걸리고 치이며 넘어질  박에 없는 처참한 인생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환란의 삶이 일부 사람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심팜의 결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란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계속되고 하나님아버지께 돌아가지 않은 사람에게는 영원한 고통의 날들의 연속이 끝이 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환란을 직시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십니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파멸의 수렁텅이 속에 빠져 있으며, 우리의 부패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살아가며,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삶만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구원을 받지 않으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더욱 가중되고 결국은 우리의 멸망의 날에 이를 갈며 슬퍼하는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두가 우리의 허물 때문이며 무지와 결함만을 함의한 죄된 지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환란은 우리의 삶에 지속적으로 엄습하고, 우리가 편안하다고 영혼의 안식을 취할  무렵 발밑에 다가와 우리를 노려다 보고 우리가 한눈을 팔 때 곧바로 엄습합니다. 

우리는 환난을 결코 피할  없으며  환란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괴로워 하다가 인생의 종말에 이르러 눈앞에 다가온 무시무시한 지옥의 현장을 목격하는 순간 우리의 숨은 끊어지고  세상에서 결코 상상해보지도 않았고, 경험하는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지옥을 바라보고 숨이 멎어 영혼이 분리되고  것입니다. 

앞에서 말할 것처럼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하는 가인의 영혼에는 어떤 지식이 있었습니까

그에게는 하나님을 진리대로 인식할  없는 왜곡되고 거짓된 지식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무하여 하나님을 멸시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의하라고 명하신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죄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죄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자기의 행위를 보시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가인은 하나님과 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관한 왜곡된 지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다가오셔서 물었습니다. 

 동생 아벨이 어디있느냐

그는 확실히 하나님이 자기가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을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게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대답합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는 자기가 동생 아우를  죽여 놓고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십니까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상대방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 거짓말을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인이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므로 어디든지 계셔서 자기가 아벨을  죽일 때 지켜 보고 계셨다고 생각하면 아벨을  죽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죽였어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못할 것입니다. 확실히 가인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가인이 아는 하나님은 사람처럼 눈이 있어서 공간을 벗어나면 볼수 없는 피조물과 같은 존재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모두다 알고 계시고 지켜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 고개를 돌리시고  보시는  같으나 눈물을 흘리시며 여러분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주위에 어디든지 계시고 여러분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앉고 일어섬을 보시고 숨쉬는 모습도 보시며, 한숨을 들여 마쉬고 내쉬지 않으면 여러분이 위험을 당하기  때문에 즉시 숨을 내쉬도록 하십니다. 여러분이 살기 위해서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쉬고 있는 모든 삶을 지켜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결코 속일  없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하나님을 속이고 아벨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놓여진 환경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말할 것도 없는 영혼의 환란속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건짐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빠진  환란의 세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왜곡되고 무지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인처럼 온갖 위험과 공포와 고통의 덧이 여러분의 한발 앞에 높여 있어서 여러분의 내딛는 발마다 올무로 채워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의 환경에서의 비참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공포가 여러분을 위협하고 한발 내딛는  목에 착고처럼 채워진 덧을 발견할  없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여러분의 인생은 계속되어지는 죄의 증가로 인하여 여러분이 스스로 늙어지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거짓에게 속고 있습니다. 거짓은 여러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영혼의 지성에 좌정하고 여러분을 살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성에서 육체의 감성에 반영되는 모든 지식이 거짓이고 왜곡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여러분이 스스로를 혐오하게  것이지만  혐오까지도 거짓이 드러내는 쇼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알아야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야만 새겨져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지식에 의해 살게 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말이 너희 안에 거할 곳이 없으므로8:31) 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유대 바리세인들에게 거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유대 바리세인들은 당대에만 해도 하나님을 가장 경건하게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타락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모든 것에서 왜곡된 자기지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식은 본래 지식 속에 무지와 결함을 함의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흔히 사용하는 수많은 언어가 영혼의 지성이 생성한 지식이 객관적으로 표현되므로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데, 지성이 생성한 자기지식이 육체를 통하여 밖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이렇게 표현되어진 언어는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 무지와 결함이 함께 함의 되어 있는 지식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언어에 무지와 결함이 함의 되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최초 사람에게 돌아가서 살펴 보아야 합니다. 

현대 언어 학자들은 한결 같이 사람이 자기 존재로 지식을 자연스럽게 생성하여 가지고  지식을 언어로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 언어학자 스티븐 핑거는 노음 촘스키의 이론을 이어서 언어를 본능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본능이라는 의미를 예를 들어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은 자신의 천재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거미줄을 치게끔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어린아이는 정규 교육이 없이도 자연 발생적으로 발달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점을 들어 사람은 태어나면서 언어를   있도록 뇌를 가지고 태어난 생물학적 결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없이 많은 반복적인 방법으로 모글리 현상에서 나타난 바를 증거와 외딴섬에서 홀로 버러져 자란 사람을 비유로 설명해 왔습니다.하지만 스티븐 핑거는 모글리 현상의 사건이 지구상에 있었던 것을 사실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 회의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근거에서 볼때 곰이 사람을 기른다는 것은 곰이 아주 미련한것이어야 하지만 본능에 의하면 곰이 사람을 기를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최근에는 지식을 가지지 않은 짐승들은 자기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감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지적인 지각에 의한 인식입니다. 아쉽게도 짐승들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있는 지성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존재를 느끼는 감각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지각을 가지지 목한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자기 인식을 가질  있는 지식을 가진 존재이고  지식을 육체를 통해 객관적으로 표출하는 것을 언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언어는 다윈론의 주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물학적인 결과물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언어는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한 지식이 육체의 감성을 통해 객관적으로 표출된 것이기  때문에 영혼의 생성과 함께 별도로 영혼의 지성에 주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같이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창조에 관하여, 사람에 관한 모든 지식을 주신 것입니다. 지음을 받은 존재인 사람이 스스로 지식을 생성할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환경에서 경험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을 자기의 영혼에 기록하여 생성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해 지식을 생성하게 됩니다. 

사람이 경험을 통해 지식을 얻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육체의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감각은 객관적 실체와 사실들, 그리고 환경적으로 경험한 사실들이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되고  표상을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지식본유지식 조명하여 지성으로 표상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감각한 감각은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지각하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지식화 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객체는 사람의 육체가 오감을 통해 감각된 사물을 말하고 사실들은 상황에 대한 공간적 시간적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이 감각되어진 것입니다. 이것들이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어진다고 해서 그것들을 인지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의 영혼에서 지각되고 인식하려면 반드시 지식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 지식들을 두어 사람의 영혼에서 조명하도록 주신 것입니다.(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지식은 사람의 지성이 직접 적용받아 지각할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영혼의 지성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적용이 불가능함으로 사람은 반드시 사람의 지식을 생성하여  지식으로  지각하고 인식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사람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얼마동안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해 여러 가지 지식 활동을 하였으나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기능을 잃게 되자 영혼의 지성은 감각된 표상을 조명해주는 본래의 지식이 없자 무지의 어두움이 몰려오게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이미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했고 지성은 감각된 표상을 받아들여 지식을 생성하는 반복적인 활동을 하지만 실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본래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자기가 이미 생성한 자기지식으로 표상들을 조명하여 자기지식을 생성하게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생성한 지식은 새롭게 감각한 표상들과 일치하지 않은 여러 가지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성에 생성되어진 지식은 표상들을 완전하게 조명하여 주지 못하므로 모르는 부분과 결함을 가진 부분에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합니다. 바로 이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왜곡된 지식이고  지식은 모든 타락한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지식입니다. 

모든 사람의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왜곡된 지식으로 인지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식으로는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를  없고 모든 사물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왜곡되게 인식함으로 거짓된 하나님을 지어낼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삶에 있어서 처하는 환난은 왜곡된 지식으로 말미암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자연 환경으로 말미암은 어떤 태풍이나 지진등의 자연재앙이 덮치고, 전쟁과 각종 범행 사건이 덮치며, 잘못으로 인하여 위기와 고통이 엄습할 때만 어려움이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완전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지성이 생성하는 무지와 결함을 하의한 지식으로 죄의 재앙에 빠져 있고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바르게   있는 안목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비참과 슬픔 뿐입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태는 지극히 위험한 미래를 망각한 허구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자리를 잡고  진리로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식의 시작을 오직 복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히 복음을 듣고  복음을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하여 지성이 복음에 대한 지식을 생성함으로 복음이 뿌리내려지게 해야 합니다. 

  

 

'로마서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란은 인내를 9(롬5:3)  (0) 2015.05.23
환란은 인내를 8 (롬5:3)  (0) 2015.05.23
환난은 인내를 6(롬5:3)  (0) 2015.03.28
환난은 인내를 5(롬5:3)  (0) 2015.03.14
환난은 인내를 4(롬5:3)  (0) 2015.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