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께서는 죄에 빠져 비참과 인생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무지 가운데 빠진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세상에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어떻께 믿을 수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사실 이 문제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직 사람의 영혼에 복음이 심기우고 성령께서 조명해 주심으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아무도 예수 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내게로 이끌지 아니하고는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느니라(요6:44)"고 말씀하신 것이 사람이 예수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이끄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 마귀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그것만으로 신자의 여부를 구분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를 아는 것을 말하기 앞서 환란에 관하여 결론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신자에게 임하는 환란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환란이 없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결코 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말할 때에는 창세전에 아담안에서 작정한 사람들을 말하고 세상 사람들을 이방인 곧 하나님의 작정과 관계없이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낳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자 그들의 육체에 정욕이 영혼의 지성을 점령하여 육체의 욕구로 만족을 누리려고 일어났고 이때 사람은 정욕을 일으켜 동침함으로 사람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욕으로 말미암은 잉태는 하나님의 작정과 전혀 관계없는 아들을 낳았고 그가 바로 가인이라는 것을 누차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잉태하여 아벨을 낳았는데 그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아는 사람입니다.
아벨을 보십시오.
그는 가인에게 맞아죽은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 까요?
아벨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담의 범죄가 마치 자기의 범죄인 것 처럼 여겼고, 자기안에 있는 정욕이 가인을 존재하게 했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시말하자면 가인의 존재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이란?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사람인지를 인식하고 자기의 존재가 하나님의 작정과 관계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요?
아벨은 가인을 향하여 한없는 사랑을 베풀 수 밖에 없습니다.
실지로 아벨은 가인의 존재가 정욕으로 말미암은 이방인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자기 외에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으로 가인과 관계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디베랴 광야에서 선포하신 산상수훈의 말씀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것입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원수를 사랑하라,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고, 왼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도 돌려대고, 것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내어주고, 오리를 동행하자 하면 십리를 동행하라. 용서하고 사랑하라. 이것이 산상수훈의 중심말씀이라면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교훈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 무엇인가?
이 산상수훈에서 아주 잘 나타나듯이 아벨은 가인에 대하여 이런 교훈적인 사람을 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맞아 죽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의식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념이 그를 희생하는 사람이 되게한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이 존재한 것이 순전히 자기의 죄 때문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의 죄란 실질적인 자기 자신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결코 그런 의식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기가 평생을 섬기고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가인이 한없이 불쌍했고 그의 삶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으로 불신자들을 바라보면 정말로 한없이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살다가 어떤 상태로 든지 생을 마치면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게 되는데 가인과 같은 세상인들은 그것을 허락받지 못하는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인생의 여정을 살펴 본다면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그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것입니다.
아벨은 그런 가인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맞아 죽어주는 것이 그들을 존재하게한 댓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의 부름에 쾌히 응답하고 나아가 가인의 분노에 반항하지 않고 맞아 죽었습니다.
땅에 피를 쏟고 죽음에 들어간 아벨의 핏소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합니다.
이 호소는 자기의 죽음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가인의 운명적 인생에 대한 변화를 소망하는 호소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벨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의 영혼은 결코 자기의 죽임 당함을 억울하게 호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데반이 돌에맞아 순교 당하면서 자기를 죽인 자들을 용서를 구하는 호소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때 당신을 잔혹하게 매질하고 고통을 준 자들을 위하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피의 호소를 언급하시는 것은 가인으로 하여금 자기의 변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자기의 행위를 깨닫도록 하시는 것이고 가인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있느냐?
가인의 터무니 없는 대답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다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고 쓸어내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인을 회개케하여 구원하시려는 것이지만 가인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용서하실수 있고 구원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기 때문에 완악하게 거절하고 만 것입니다.
회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회개는 하나님의 관심을 돌이켜 구원에 이르는 소명으로 나아가게하는 귀중한 동기가 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명에 응답하십시요. 우리는 아벨의 죽음이 주는 교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벨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가지고 가인을 상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가 가인을 이세상에 있게 했다는 죄책의 의식을 가졌고 가인을 한없이 불쌍히여겨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고 가인을 섬기되 최대한 긍휼의 마음을 쏟아낸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은 자기가 범죄함으로 이방인인 불신자들이 존재되었고 그들이 영원한 비참의 나락에 떨어지는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자기의 희생과 헌신을 아낌없이 쏟아 그들을 사랑하며 존재하게한 그 죄악의 행위를 용서받으려는 마음으로 희상을 당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인과 같은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의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는 미움과 분노와 원망이 귾임없이 솟구쳐 언제든지 노를 발하고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분출하기 직전의 화산과 같은 상태입니다.
이방인의 영혼은 자기의 존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 지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말미암았으나 실지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존재하게 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관계에서 작정에 의한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미움과 분노와 원망이 나올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원수로 생각하고 적의를 품으며 만나는 누구든지 죽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방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으며 그들로부터 온갖 고통을 당하게되므로 환란이 떠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자신들을 낳아놓고는 전혀 책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지옥을 향하여 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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