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죽음의 의미?
어떤 분이 바울서신의 내용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복음이 너무도 헬라철학식이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습니다.
저는 비로소 교회에서 말하는 '영적'이라는 의미에 대해 바르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예수 죽음을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라는 자아가 예수 안에서 죽는 다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해석한다고 “성령의 조명”이라는 의미로 설명하신 것일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조명이 맞지만, 성령께서는 이렇게 조명하시지 않습니다.
뭐,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즉 이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나니1”라는 의미가 성령이 조명에 의해 나라는 자아가 예수안에서 함께 죽는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복음을 철저히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 죄를 홍수처럼 쏟아내는 하나님의 아들이 범죄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죄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최초의 사람 아담을 말하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후 죄에 속한 사람이 된후 죄의 결과로 이세상 사람들을 낳은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죄인으로 태어났고, 이 세상을 살면서 온갖 불평등과 부조화, 무질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행복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원인을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고, 하나님이라면 이런 불평등하고 더러운 세상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편애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로부터 태어났으나 우리의 마음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악을 행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곧 성경이 말하는바 온 세상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면, 우리를 죄인으로 지으시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죄인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의 주장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지으셨다면, 선하신 하나님이 죄가 만연한 세상에 우리를 두시는 것을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현제 세상이 이렇게 더럽고 불평등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은 안 계시고, 만물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존재한 것으로 믿고 성경의 주장을 믿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 인정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죄를 우리에게 조명하시고, 우리가 죄인임을 느끼게 합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지은 온갖 비 도덕적이고 비 윤리적인 자신의 행위들을 상상하면서 이런 죄들로 인하여 ‘자신이 죄인이구나’라는 고백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호소 하면서 비로소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조명에 의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때, 인류의 최초의 조상 아담의 불순종에 의한 죄의 의미들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삶에 드러난 행위들로 인한 죄를 자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막연한 죄 의식의 감각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조명하셔서 우리가 죄를 깨닫게 되는 이 시점은 비로소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교회는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에게 성경의 말씀대로 바르게 죄에 대한 지식을 교훈하여 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도록 해야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바와 "자기 자아가 예수안에서 죽는다"라는 가르침은 성경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헬라 철학으로부터 성경을 해석한 것으로 기독교안에 침투한 스콜라철학적인 해석입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못 이해되도록 가르치는 것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하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잘못 적용하여 진리에 의한 지적인 깨달음을 갖지 못하므로 사람의 영혼에 들어온 생명의 씨앗인 복음이 자라 진리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성이 만들어낸 자기 지식에 성경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자기 철학의 견고한 터를 튼튼하게 해버리는 것입니다. 이사람은 교회에서 말씀이 계속 선포되어질 때 거듭난 새사람이 성장하여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본래 타락한 자기자신이 견고해져서 참된 복음을 왜곡되게 받아들이게 되어 결국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현재 교회안에서 부지기수로 일어나 신자라 하면서 자기가 느끼고 깨닫는 방식에 따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도를 주로 받는 왜곡된 신앙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는 말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하여 합리적으로 적용시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실상은 이렇습니다.
실지로 이 내용은 복음의 표준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 죄안에 살게 되었고,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인 그들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들을 낳았고, 조상들은 아담과 하와와 같이 동일한 죄인일 수 밖에 없으며, 죄의 상태에서 또 우리를 낳았고, 우리도 역시 죄의 열매들이며 조상들과 같이 죄로 후손을 낳을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전인격적입니다.
우리안에 어느 한부분이라도 죄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온통 죄로 더렵혀진 인생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고달픈 현실만 있는 것입니다.
죄의 열매인 우리는 죄 안에서 죄의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죄가 아닌 삶이란 한 점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열매는 필연적으로 삶의 불만족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불만족한 원인은 죄에 있다고 알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탄생을 저주하게 됩니다.
죄의 열매로 태어나게 한 인류의 최초의 조상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조상을 지으신 하나님까지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지로 사람의 영혼안에 있는 지성에는 이런 죄된 지식민 가득채워져 있고 진리라고는 한점도 없습니다.
창세기 6장에 죄된 사람의 상태를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들인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지독하게 미워하는 서로 상반된 감정에 의해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큰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셔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증오하고 원망하며 미워하여 완강히 거절하며, 사랑을 베풀려고 하면 뿌리치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하지만 늘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방식대로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을 완강하게 싫어하고,
어떻게든지 자기들의 세계에 하나님이 계시지 못하도록 거절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전혀 모르며,
자기들의 정체성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을 지배하는 죄된 관념이 모든 증오와 미움을 사람을 사용하여 세상에 쏟아내는 것입니다.2
사람의 영혼 안에는 자기도 모르는 하나님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을 지으시고 나아가 자기들을 지으셨으면서도 삶 이후에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버리신다는 비극적 심판을 영혼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로 가득채워진 모든 사람들은 본질상 하나님을 인식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타락한 모든 사람이나 이방인들의 영혼은 벌써 하나님과 죄로 말미암은 심판을 이미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영혼이 인식하고 있을뿐 사람이 본성으로 지각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영혼은 지성으로 통하여 까닭이 없이 쉬지 않고 증오와 미움을 쏟아내고 그것이 사람의 지성에서 반영되어 쉬지않고 이세상에 해악을 드러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 있는 죄로 말미암은 심판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증오하는 미움을 영혼안에만 가두워 전인에서 깨닫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 이것이 사람의 구성에서 영혼과 육체가 존재하지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영혼이 죄에 대한 심판의 비극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영혼은 진리를 받지 않으므로 죄된 자기의 상태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미워합니다.
영혼안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의 심판과 영원한 비극적인 저주의 두려움으로 솟구치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영혼이 이런 분노의 삶에 짖눌려 아사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과 육체의 사이를 막아 영혼으로 육체에 분노를 쏟아내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혼과 육체 사이를 막지 않으시고 내버려 두셨다면 이 세상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찢겨지고 부서지는 피터지는 난투장이 되어 온전하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영혼이 영원한 심판과 지옥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 사실을 조명해 주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영혼의 지성이 지식을 가지지 못함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의 영혼이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과 그로 인한 영원한 지옥에 관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면서 외면하고, 오히려 분노와 증오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로 인해 사람들은 까닭없이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아무런 이유없이 하나님이 싫고, 외면하고 싶고,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까지 미워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죄로 말미암은 결과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죄에 빠진 하나님의 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최초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이었으나, 그 아담은 죄를 가져왔습니다.
아담은 죄로부터 사람들을 낳아 모든 사람을 죄의 열매가 되게 했고,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게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계획대로 죄인들 가운데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이 되게 했으나, 죄의 열매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전히 죄에 속하여 있지만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은총을 입었고, 선택을 받지 못한 이방인은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철천지 원수처럼 미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미워했고 죽이려고 사형을 선고 하여 이방인에게 죽이라고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도 역시 죄의 열매였기 때문에 죄의 본성을 벗을 수 없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자 아주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방인이 예수를 죽인 이유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조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지금 온 세상이 이스라엘을 싫어하여 이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재수없게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뼈솟에서부터 미워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여 내어주게 되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낸 것입니다.
이 분노는 죄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분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하여는 자기들의 정욕을 채우고 그 죄의 정욕으로 우리 이방인을 낳아놓고는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는데 대하여 증오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세상에 사람을 만드셔서 영원한 비극에 처하게 하신 심판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증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들의 분노는 쇳물을 녹이는 들끓는 용광로에서 솟구치고,
땅속의 용암이 지표를 뚫고 속구치는 화산처럼 쏟아내며,
피할 틈이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와 같은 불덩어리들이 퍼 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낳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쏟아내는 분노이고,
바로 이분노로 2천년전 골고다 언덕에서 죄인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 죄인들이 누구입니까?
복음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증거합니다.
바로 너희고, 지금 이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있는 여러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를 죽인 장본인은 우리안에 있는 우리의 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가 예수를 죽인 것이지 2천년전에 로마병정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안에 있는 죄가 예수를 향하여 쏟아내는 분노입니다.
잔인하기 이를 대 없습니다.
용서라고는 먼지 만큼도 없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인식하는 동류에 대한 감정은 조금도 없습니다.
표독스럽고 잔인한 분노와 멈추지 않고 쏟아내는 영혼의 미움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안에 움크리고 있는 미움과 저주가 여러분을 존재하게한 하나님의 아들에게 쏟아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사랑한다고 여기에 앉아 있지만 실지로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을 존재하여 영원한 심판으로 영원토록 들끓은 지옥으로 보낸 심판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려고 움크리고 있습니다.
두고 보십시요.
하나님의 아들은 반드시 이땅에 다시 오십니다.
그분이 하늘로 승천하실 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고 그를 찌른 자도 볼것이라고 햇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다고 하는 여러분도 그 예수를 미워하고 분을 쏟아내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혼은 속히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안에 있는 분노와 미움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깨끗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여로분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는 말을 소홀이 들으시면 안됩니다.
지금 제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전도자의 자격으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안에서 솟구치는 분노와 저주를 어떻게 치유하는지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치유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면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시편기자의 노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6편의 기자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노래합니다.
그 노래에 담긴의미를 오늘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구절만 보려고 합니다.
"여호와여 어느때 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이 기자가 왜 이런 노래를 부릅니까?
이 기자가 죽음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까?
물론 다윗은 수없이 많은 죽음의 수렁에 허우적 거렸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기자가 부르는 노래의 앞과 뒤를 살펴 보시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바로 다음 절입니다.
"사망중에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자 누구니이까"
여러분이 진정으로 구원을 바라신다면 이 구절을 수백번 수 천번 읽으십시요.
여러분의 지성에 이 구절로인하여 간증 거리가 나오도록 읽으십시요.
여러분이 이 구절을 읽으신다면 시편기자가 말하는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로 간단하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호와여 내영혼을 건져 주세요.
내가 지금 사망중에 있는데 어떻게 주를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이 나를 지으시고 존재하게 하셨는데 나의 영혼이 당신을 알지 못하니 어떻게 내가 당신께 감사하겠습니까?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도 태어났으나 죽고, 한창 활기를 가지고 세상을 이끌어가는 장정도 죽어 이세상에서 기억되지 않으며, 장성한 어른도 죽어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피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로부터 태어났고 죄의 열매로 살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죄로 태어나서 죄안에 갇혀 있다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서 사망에 처하여 지고 스올로 갑니다.
시편기자의 노래는 죄인된 인생과 영원한 저주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자신들의 영혼을 건져 달라고 노래한 기억이 있습니까?
여러운은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합니까?
복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복음의 목적은 지금 현재 죽어 있는 여러분의 영혼에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그 말씀으로 새 생명을 살게하는 것입니다.
저주와 분노만 쏟아내는 심판받은 영혼의 상태를 바꾸는 것입니다.
주의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것 같이 "믿음의 결국은 영혼이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라고 한 것이 복음의 목표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세상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죄의 근원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더이상 죄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고 그 결과물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죄인들이 태어나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더 이상 죄의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죄의 근원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도는 말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이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비로 인류의 조상 아담,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사람이 가져온 죄를 막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죄로 죄의 열매를 낳았습니다.
쉬지 않고 낳고 낳아 죄가 이세상에 만연되게 해버렸습니다.
이 죄의 열매들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죄는 쉬지 않고 죄를 낳기 때문입니다.
죄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려고 선지자를 보내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비밀을 알지 못하였고 결국은 죄를 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하시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죄에서 태어나고 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볼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 분노를 쏟아내고 터질듯한 미움의 감정을 쏟아내 피를 빼앗아 생명이 없게 해버렸습니다.
왜그런지 아십니까?
제가 그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복음의 비밀입니다.
여러분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 여러분 자신을 미워했고, 존재하는 것을 증어하며, 살아있는 것이 원통했습니다. 여러분안에 있는 그 죄가 싫었고, 그 죄를 살려 둘수가 없었습니다. 비로소 여러분은 여러분안에 있는 죄에 대하여 분노를 쏟아냅니다.
이 분노가 향하는 곳이 여러분을 존재하게한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었으나 그들 자체도 역시 죄에 속하여 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최초 죄를 세상에 들여온 사람은 아담인데 그 아담은 죽어 그 영혼이 하늘로 가버렸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서 쏟아지는 분노와 저주는 바로 그 아담에서 쏟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
인류의 최초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살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를 만나는 자는 반드시 그를 죽일 것이고, 그의 영혼은 진토에 버려지며 영원한 저주에서 고통을 벗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류의 모든 것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다시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담이 자연적으로 늙어 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죄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여야 이 세상에 들어온 죄가 차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된 사람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겠다.
그 메시아는 아담을 대신할 사람이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아주 깊고 폭넓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둘째 아담이라고 했고,
그 아담은 죽어 하늘로 갔으니 하늘에서 낫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메시아가 하늘에서 온 분이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파심에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메시아는 반드시 이 세상에 죄를 가져온 아담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을 죽어 하늘에 가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와야 합니다. 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이면서 하늘로부터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 방법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동정녀에게 탄생하는 방법을 택하셨고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해 주셨습니다.(이사야 7:14)
그가 오면 어떻게 됩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로 말미암아 죄의 열매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죽여 죄를 단절시켜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됩니다.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고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니까, 모두가 아담을 죽여야 합니다.
이 방법은 결코 불가능합니다.
모두가 아담 하나를 죽이는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해결하시고 의를 이루셨습니다.
죽은 아담을 다시 살려 보내시지 않으시고 아담을 대신하여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고 의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반드시 하늘로서 와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소원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비밀을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철필로 새긴같이 지워지지 않게 새겨져서 여러분이 이 비밀로 새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두번째 아담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사람에게 미움을 당하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오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에수 그리스도 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내용을 기억하여 복음서에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온 것은 내 생명을 너희에게 주고(6:53~54) , 마지말날에 다시 살리리라(6:44)입니다.
사도마태도 말하기를 "내가 온것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20:28)"고 했습니다.
아담이 죄에대하여 죽임을 당하여야 한 것처럼 예수는 죽임을 당하기 위해 이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입니다.
2천년 전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이 죽인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죄를 가져와 모든 사람을 죄에 빠드린 장본인이기 때문에 죽인 것입니다.
이로써 죄는 죽어 차단되었습니다.
이것은 내 안에 있었던 그 죄가 영원한 지옥의 비극적인 심판을 받게된 것을 싫어서 죄를 생산하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최초의 죄의 근원은 아담, 곧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담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도록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자신이 그 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담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죄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에 죄를 막을 길없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영원히 심판을 받게 되고 영원한 저주의 비극을 벗어날 수 없으니 영원히 죄가 세상을 지배하고 모든 세상에 죄가 만연되게 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신비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두번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말했습니다.4
온 세상 사람들은 아담으로 말미암았는데 아담은 죽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은 첫번째 아담이 가져온 죄를 끊고 살아나는 영이 되었으니 첫사람에서 둘째 아담으로 옮겨오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첫번째 아담은 혈과 육으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두번째 아담은 혈과 육이 아니라 영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혈과 육으로 태어나 이세상에 온 우리가 영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본질상 두번째 아담에게 결코 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첫번째 아담의 혈과 육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혈과 육을 이어받으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 사람의 육신을 입은 것입니다. 그는 죄를 유전받지 않았습니다. 죄가 전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혈과 육을 조상으로하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를 조상으로 두는 두 계보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여자와 결혼을 하시고 세상에 후손을 두신다면 그것은 곧 혈과 육을 가진 후손을 낳는 것이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운 존재를 태어날 수 없고, 아담의 모든 후손은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혈과 육으로 우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후손을 낳아야 합니다.5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신 사명은 먼저 첫 아담의 죄를 끊어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며, 두번째는 영으로 사람들을 낳는 것 두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이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먼저 죄로죽고 영원히 죄를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한마디에 증오를 쏟아냈고, 분노를 퍼부어 죽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세상에 죄를 들여온 죄의 관문인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죄의 관문에 세우고 죄의 문을 완전히 파괴하여 이세상으로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완전히 막았습니다.
이제 세상에는 죄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미 이세상에 들어온 죄는 혈과 육을 통해 계속 잔존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혈과 육에 속한 사람은 계속 죄에 속하여 있고 죄의 후손을 계속 낳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혈과 육의 과정으로 이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2천년전에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지만 죄는 혈과 육을 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본래 죄가 아니기 때문에 죽을 수 없는 영이십니다.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의 죄의 근원을 파괴했다.6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이 아니하면 내게로 올수 없느니라7,"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의 관문을 파괴하시는 사역을 마치시자 성령께서 오셔서 여전히 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불러 생명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끊어지고 하나님아들 안에서 부활과 생명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공급되어지고 있습니다.
죄의 시작이었던 아담은 끊어졌고, 의와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죄 안에서 우리에게 공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의와 생명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구원해 놓으셨으나 여전히 우리가 죄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껏 부르시고 사도들과 교사들, 그리고 전도자들을 보내 어서 오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2천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죽어버렸으니, 그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영생의 생명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죽음의 참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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