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1편
시편기자는 자기에게 밀려온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다.
잠시 한눈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을 벗어난 어떤 환경에 젖었다가 영혼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에서 일어난 하나님에 대한 감각은 다른 것으로 인하여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으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워하리로다.
그 문제의 발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일로 인하여 마음에 곤고였든지 아니면 육체의 생각에 사로잡혔든지 영혼의 시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돌려져 있었고 다시 돌이켰을 때 감동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방인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주님께 빼앗긴 것을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고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을 만한 일들이 있는가하면,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신앙의 시험이 밀어닥치면 그리스도인들은 곧잘 휘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신뢰를 지키느냐?
엄청난 문제로다.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마음의 갈등은 해아릴 수 없고 심지어는 잠이 오지 않고 육체의 질병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서야 한다는 마음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어쩔수 없는” 그런 상황에 이를 때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드믑니다.
신앙,
주님께서도 아주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
이런 상황에서 시편기자는 승리를 맛보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잃었으나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택하고 보니 자기에게 부여된 삶의 가치가 훨씬 더 높아졌던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의 결정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세속에 즐거움보다는 하나님안에서 잠시 잠간의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더 기쁜 결과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우리가 세상과의 전쟁에서 필연적으로 쓰나미 처럼 휩쓸려갈 것 같은 위기라고 생각하고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모든 삶의 가치가 나락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하고 성소를 의지하였더니 하나님의 도움이 시온으로부터 임한 것입니다. 시편기자의 결단은 곧 하나님의 응답으로 나타났고, 근심과 걱정도 사라지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고백적인 삶이 더 가치 있게 되어 높임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매사를 하나님을 높이며 인정하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게하신 삶이라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이런 순수한 신앙의 터전에서 세상과 싸워서 승리하는 삶을 누리실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으로 인한 신앙고백이 여러분의 삶에서 증거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세속적인 삶을 완전히 희생하므로 얻는 보화가 얼마나 크고 가치 있는 것인지 경험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교훈이고,
그들의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인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בִּרְכ֣וֹת ט֑וֹב “비르코오트 토브” ‘아름다운 복’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매우 어려운 말입니다.
실지로 בִּרְכ֣וֹת 는 어근이 הַֽבְרָכָ֨ה이고 축복, 자유, 가득찬, 진실의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희생을 결코 무가치 하게 하지 않습니다.
선한 복으로 영접하셨고, 심지어는 승리의 월계관보다 더 값진 관을 머리에 씌우셨습니다. 그 관은 왕관이었고 영광의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축복이었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리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이 아침에 우리는 깨우시는 하나님
우리와 대화하시고 감정을 통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서
사랑한다고
다시는 버리지 않는다고
소식을 전하시고 싶어서 일어나신 것입니다.
우리의 어눌한 귀가 주님의 말을 들을 수 없고,
우리의 캄캄한 시력이 주님을 볼 수 없으며,
우리의 감각 없는 손길이 주님을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 안에 좌정하셔서 함께하시며,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고백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졌지만,
눈만 뜨면 제물이 아닌 타락한 죄인이 되고,
또 다시 산 제물로 올려놓았으면서,
또 다시 타락한 삶에 미련을 가지고,
세상의 욕망과 육신의 만족을 위해 한 시간을 허비해 버리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속이기까지 어느 때까지 일까요?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입술로는 주만이 나의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의 시련에서는 주님을 피하여 돌아서는 배신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이 모습을 가지고 다시 또 산 제사를 드리지만
만성이 되어버린 나는
제사가 제사인줄을 모르고 감각 없이 예배를 드리기 일쑤입니다.
내가 신자인지
그리스도인인지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인지
입술로는 그리스도를 말하고
지식으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허울뿐인 위선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영접하시고 그 머리에 순금으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 시에 아담 안에 계획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에게 순금 관을 씌우는 것은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버림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의 조건에 전혀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노래를 들으면 그의 원수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도
구원이 무엇인지도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났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에게 주어진 비극을 피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윗에게 씌어준 순금의 영광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비극을 피할 수 있는 은혜면 족합니다.
순금 관을 쓰지 않아도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아도
아버지의 아들만 된다면,
탕자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탕진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재산은 언재까지 나의 힘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되지 쥐엄 열매를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문뜩 생각이 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본 것입니다.
정체성을 파악한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복음은 바로 여러분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려드렸습니다.
그 복음에 의하면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탕자는 일어섰습니다.
내면으로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뭐든지 좋아.
노예라도 좋아
아버지의 집에 있기만 한다면
이 지옥을 벗어날 수 만 있다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었습니다.
그것도 자기의 백성과 아들을 버리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끊어내고 건져내 주시고 아들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씌여준 순금 관처럼,
버려졌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그에게 주셨으며 곧 영원한 장수로 소이다.
왕이 생명을 구하였더니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영생까지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주의 구원이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입히시나이다.
이제 구원의 영광을 우리의 삶속에서 드러내십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시각이 있습니다.
거듭난 한 사람으로서 타락된 옛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새 사람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이 시각에게 공히 존귀와 위엄을 입혀주신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는 결코 타락의 속성을 가진 옛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의 위엄을 입히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듭났으면서 우리의 본서에 남아 있는 옛사람으로 인하여 인생의 고난이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악하고 간악한 옛 사람은 본성이 거짓이고 타락이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위엄을 자꾸만 추하게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본성, 타락의 본성이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과 존귀와 위엄에 먹칠해 버리기 위해 더욱 우리를 세속으로 끌고 가 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의 갈등과 싸우느라 매우 힘든 고통에 머물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아주 잘 표현한 사람이 존 번연이었고, 천로 역정과 거룩한 전쟁이라는 책에서 아주 잘 표현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우리의 사람이 누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존귀와 영광과 위엄을 찬란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삶의 순교가 필연적으로 요구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교로 말미암은 승리의 결과는 영광으로 돌아옵니다.
옛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지만,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고 이기신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는 신원해 주시며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값진 영광의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영원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여기에 이렇게 보증하십니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존하신 이의 인자함으로 흔들리지 아니 하리이다.
왕이 하나님을 의지한 것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는 견고하게 보호하실 것입니다.
왕의 손이 왕의 모든 원수들을 찾아냄이여 왕의 오른 손이 왕의 미워하는 자들을 찾아 내리로다.
왕이 노하실 때에 그들을 풀무불 같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우리의 눈에 비취는 어두운 세력들
이 세상의 타락한 악마의 세력들
우리를 무너뜨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게 하는 더러운 세력들을
우리의 눈으로 분별할 수 있고
그들을 이기게 하십니다.
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 끊으리로다.
필경은 이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구원의 제한적인 숫자가 채워지면 모든 세계의 종말은 필연적입니다.
지금 그 세대로 향하고 있고, 이스라엘이 3분의 1일 죽어가는 비극적인 날들이 다가오는데 그날에 비극의 주인공들이 에서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팔아넘긴 실수로 인하여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6~17)
한번 버림을 받은 사람은 다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비극은 완고함과 무지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신자들이 멸망을 당하고 필연적으로 주의 백성만 남게 되는 사건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옛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필연적으로 멸망을 당할 것인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대저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리로다.
네가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이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공격하다가 실패할 미래를 예언한 말입니다.
이방인은 까닭 없이 이스라엘을 미워합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인류의 비극은 이방인의 영혼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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