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설교본문중에서
------------------------------------------------------------------------
야고보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믿음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며 행위 되어집니까?
야고보 사도는 그의 서신 2장에서 믿음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어떤이들은 야고보 사도와 바울이 서로 부딪힌 주장을 한다거나 아니면 같은 주장을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고 하는 사람들 봅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검토해 본 신학자들은 야고보 사도는 바울의 로마서 10:17의 말씀을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ἄρα ἡ πίστις ἐξ ἀκοῆς, ἡ δὲ ἀκοὴ διὰ ῥήματος Χριστοῦ.
야고보 사도는 2장에서 우리 말로 믿음이라고 번역되는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합니다.
한 단어는 명사로서 ἡ πίστις 이고 다른 단어는 동사로서 야고보 2;19에 σὺ πιστεύεις,입니다. 앞의 ἡ πίστις faith 이고 σὺ πιστεύεις (πιστεύω) believe입니다.
내가 믿는다, 라고 할 때 πιστεύω 이고, 나에게 믿음이 있다, 할 때는 πίστις faith입니다.
이것을 알고 성경을 접해야 합니다. 우리말 한글 성경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왜곡하거나 오류를 범하고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왜곡된 신앙으로 빠져들어 이단을 생명 걸고 추종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고보 사도의 서신을 통해서 설명해주는 믿음에 관한 설명을 듣고 우리가 바르게 이해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교회의 신자들이나 혹은 교사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2:17 ;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8 :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그러나 야고보 사도가 명확하게 답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26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0 :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이런 구절을 들면서 행동하는 신앙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행동하는 신앙”이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에 성경이 말하는 명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도와드리기 위해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행동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행위입니다.”
“믿으면 행하라”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믿으면 행동이 먼저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미니안, 공로주의, 신비주의)
여기에서 2:17의 헬라어 분문을 살펴보겠습니다.
οὕτως καὶ ἡ πίστις, ἐὰν μὴ ἔχῃ ἔργα, νεκρά ἐστιν καθ’ ἑαυτήν.
논의가 되는 구절의 믿음이라는 단어는 πίστις 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명사라고 했습니다.
명사는 그냥 이름입니다.
가방, 책, 의자, 사람, 등등의 이름,
추상명사로서 사물이 아닌 어떤 상태를 칭하는 말로 “믿음”입니다.
이 구절은 두 개의 동사처럼 보이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인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먼저, 믿음과 행위라는 두 개의 단어입니다.
믿음은 ἡ πίστις 이고 행위는 ἔργα입니다.
문법적으로 ἡ πίστις 는 주격이고 ἔργα 대격 곧 직접 목적어입니다. 동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ἔργα, works 이기 때문에 동사인줄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혀 아닙니다. 직접 목적격이란, 동사의 대상이 되는 목적이기 때문에 주어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입니다.
17절의 한구절 곧 한 문장의 동사는 ἔχῃ (현재 가정법 능동태)로 “가지고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이 행위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므로 17절은 한글 번역으로 완벽한 것입니다.
그런데 번역은 완벽하지만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오해하고 있습니까?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믿으면 반드시 행위가 따른다.” “믿는다고 하면서 행하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이해의 오류입니다.
'우리교회 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행 2:1~4) (0) | 2022.06.05 |
---|---|
하나님의 큰일 2장 "하나님의 지식" (0) | 2022.04.29 |
하나님 나라 (눅17:20-22) (0) | 2019.08.18 |
베드로서 강해 1중생 (0) | 2017.08.28 |
중생3 (0) | 2017.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