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이 요한복음을 강해하고 있다.
그 요한복음이 어떤것인지 알고 접하는지 모르고 접하는지 그의 해석을 보면 알수 있다.
그러나 청자들은 그가 요한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어떤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강의에 맹목적으로 동의하고 그의 강이가 참인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그 자체로서 가지고 있는 몇가지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강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인이거나 비기독교인이거나 요한복음의 특징에 대해서 인정하고 접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요한복음의 특징에 대해서 말한 것은 나의 주장이 아니다.
이미 역사는 요한복음을 특징을 가진 한 책으로 인정하고 있고 요한복음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여타의 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해설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실패할 것이다.
요한복음은 인류의 역사선상에서 사실을 기록하였고 사실을 증거한 증거의 책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인식하고 있어야하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 과제는 요한복음을 해석하려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1. 요한복음이 역사선상에서 기록한 사실인만큼 그 진실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2. 요한복음이 사실인만큼 모든 기록들의 사실을 해석상에 나타나야한다.
3. 요한복음이 지니고 있는 진정성에 오류가 없어야 한다.
나는 요한복은 1장 1절을 읽는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에 빠졌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신학대학원에서 배웠던 요한복음 강해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 사라졌다.
그때 말하는 태초에 관한 지식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태초"라.
음................
거짓말. 상상으로 쓴 글, 철학적인 사고, 인간의 사고가 만들어낸 단어,
너무나 태연하게도 요한복음을 쓴 저자는 세상이 있기 이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순간을 기록하였으니 그냥 덮어 버리게 되었다.
신앙의 갈등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도올은 뭐라고 말하는가?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선 "태초"라는 말이 과연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퍼뜩 석연하게 가슴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계속----
그는 결국 본문을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찬하기를 "매우 성실하고 좋은 번역"이라고 했다.
나는 도올이 상기의 과제를 통과하지 않고 학자적인 입장에서 요한복음을 접하고 있음을 알았다.
도음이 된다면 여기에 태초를 설명하고 싶다. 도올에게 도움이 되도록 말이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내가 사도 요한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썼다.
그가 그 말을 쓰고서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그가 아무런 증거도 없는 엄청나고 심오한 한 줄의 글을 생각하여 써넣었는데 독자들이 그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단 말인가?
아니다.
최소한
도올이 요한복음을 강해한다고 하니 목사인 나는 그가 학문적 실력이 있으니 잘 해석 할 것이지만 많은 곳에서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라고 미루어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도올이 알고 있는 성경은 실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경은 "갑"을 말하지만 도올은 "을"이라고 생각할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도올은 요한복음 첫줄부터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답은 이렇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보지 않은것은 요한복음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가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요한복음서에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태초는 어디에서 경험했는지 그 증거를 말하는 것이 도올이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바꾸어 버리고 본래의 뜻을 말하지도 않고 종래의 신학자들의 해석을 비판하기에 열을 올렸다.
나는 여기에서 요한이 말하는 "태초"와 요한복음 전체를 해석하려면 요한계시록을 먼저 읽고 요한의 사고를 이해하고 접근하라고 말하고 싶다.
도올이 요한계시록을 냉정하게 읽고 확인했더라면 처음부터 실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태초라는 시간을 경험해본 놀라운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태초를 언급하면서 한마디의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며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가진 어려운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밧모섬에서 경험한 초월적인 경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놀라운 사실이다. 그 때 태초가 무엇인지 그리고 로고스가 무엇인지 경험하였던 요한복음의 저자를 이해하지 않으면 반드시 해석을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도올은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본문의 첫시간에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것은 요한복음 내용의 "기록의 사실과 증명"을 간과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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