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기록의 목적

생명있는 신앙 2007. 3. 13. 20:46

요한복음의 기록의 목적

1. 공관 복음서를 대치, 해석 또는 보완하기 위해서

Hans Windish 는 1926년에 공관복음서를 대치하고 해석 보완하기 위해서 요한 복음서가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제4복음서가 사도 요한과 연계된 팔레스틴계 전승들을 통합시켰다는 것과 그 문서가 최종적으로 A.D 100년 즈음에 시리아나 소아시아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리고 이 복음서를 동방 헬레니즘적 구속의 메시지 형태로 옷 입힌 단 한 사람의 저자의 작품이었다고 믿었다. 윈디시에 의하면 ‘제 4복음서 기자는 마가복음서와 그 밖의 공관 복음 자료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공관 복음서 이용은 요한 복음이 자율적이며 고루 갖춘 복음서임을 입증해준다.

2. Lightfoot p29에 보면 사도 요한은 공관 복음 전승의 해석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예수전승의 제 기원에 비추어 그리고 두 세대에 걸친 그리스도교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독자들에게 ‘주님의 인격 및 그의 헌신적인 죽음과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비밀의 면밀하고도 심층적임 해석’을 베풀고자 이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한다.

3. 그리스도 복음을 헬라화 된 술어로 재술하기 위해서

E. F. Scoot는 The Fourth Gospel: its purpose and theology(Edinburgh,1908)p1-28, 4-9에서 제 4복음서가 그리스도교 복음을 그리이스인의 마음에 이해 가능하도록 번역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기록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로고스’가 ‘메시아’를 대체하며 ‘천국’을 ‘영생’으로 번역하는 등등이 근본적 재 서술에서, 제 4복음서 기자는 때때로 ‘문자적 전승’을 무시하고 예수에 의해 사용된 실제 어휘들에 상응하는 그리스어의 대응 언어로 대치한다.(고 Scoot)는 말한다. 이렇게 함에 있어서 복음서 메시지의 요소들은 오히려 요한이 사용한 공관 복음서 자체의 본질에 접근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요한이 반 영지주의적 변론을 내포하고 있다는 Scoot의 견해로 방향을 돌리게된다.

Donald Guthrie 박사는 요한 복음서가 헬레니즘적 문화에 응하려는 그리스도교 전승 해석이라는 접근 방법으로 ‘종교와 역사’학파에 흔히 유행해 온것임을 상기시키면서 Dodd의 작품을 요한 복음서가 당대 비 그리스도교 세계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선포된 것‘이라는 견해에 고전적 표현을 덧붙인 것이라고 간주했다.

4. 변증(polemic) 호교론(apologetic)으로서

1) 세례자 요한파를 겨냥한 변증

제4복음서 기자는 세례자 요한에 관한 자신의 기사를 개진하는데, 이 조명은 첫눈에도 예수에 대한 요한의 열등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1898년에 W. Baldensperger 박사가 간행된 “Der prolog des vierten Evangeliums: Sein polemisch_apologetischer Zweek(Freiburg im Breisg며, 1898).이라는 논문에서 주장하였는데 뜻밖에도 놀라운 영향을 미쳤다.

극소수의 주석가들이 W. Baldensperger박사의 견해와 같이 생각의 폭을 넓혀, 제 4복음서의 배후에 깔린 주 의도로서, 예수를 뒷전에 두고 세례자 요한을 추켜올린 특정 분파를 겨냥한 변론이라고 간주하지만, 한 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요한 복음의 ㅂ차적인 의도중의 하나였다고 동의하였다. 구체적인 사례로서 R.H. Strachan와 불트만의 태도가 바로 그렇다. 이것은 그가 요한 복음 서론은 세례자 공동체 내의 찬송시로서 생겨 났다고 추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불트만은 제 4복음서 의 기자 자신이 과거의 세례자 요한의(영지주의) 추종자였다고 주장함으로써 더 멀리 나아간다.

이것은 A.D1세기에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심각한 적수로 화할 수 있었고 정말로 화했던 분파주의적 집단이 실재했었다는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 (행 19:1-7)은 이 증거를 확실히 뒷밭침해주는 것으로 확신했었다.

2 교회 성례전 교훈에 관한 변증으로 기록하였다는 주장

이 주장은 두 주장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Oscar Cullmann이 그의 저서 Early Christian Worship 1953 p 38-59 에서 밝힌 견해이다. Cullmann은 제 4복음서 기자가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상의 예수가 하나님의 전체 구원 계획의 중보자라는 사실을 ‘보게’하려는 의도에서 그의 책을 집필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Cullmann은 이 ‘문학’작업 전체의 의도가 그의 수신자로 하여금 이제 ‘이 유월절 이후의 현재에서 믿음을 가지게하려는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이 의도를 달성하고자 요한은 독자들에게 그의 복음서가 기초하고 있는 신학적 우너리를 설명해주는 설화선집을 제시하고 있다는 신학적 원리를 설명해주는 설화선집을 제시하고 있다는 논리가 전개된다. Cullman은 이들 설화 사건 들은 세례와 주의 만찬이라는 양대 성례전 중 어느 하나와 직접 연계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요한 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에서의 물로 포도주만든 사건 요한 복음 6장에 나오는 오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을 성찬과 연결시키고, 5장의 절름발이 치료, 9장의 송경 치유사건등은 세례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13장의 발씻음 19장의 창으로 찌른 일 등은 양자 모드로 연결 짓는다. Cullman의 판단에 의하면 이것이 요한의 의할 경우 ’성례전들이 교회에 대해 지니는 의미는 역사적 예수가 그의 동시대인들에 대해 이지는 의미와 동일함을 입증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cullman에 의하면 제 4복음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전개되어 갔을 때, 교회의 생활에서 성례전들에 대해 너무 적은 비중을 부여한 그리스도교의 교사들을 공박하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간주한다.

또 다른 하나는 W. F. Howard가 그의 저서 (Christianity According to St John, London 1943 pp 143-150)요한에 의한 그리스도교에서 요한이 성례전 교훈에 대한 올바른 강조를 해야할 점증적인 필요성을 반영한다고 하는 점에서 발견한다. 다시 말하자면 제4복음서 기자는 성례전 들을 바른 위치에 세워 놓으려는 뜻을 세운다. 그에게 외형적인 상징들이 내면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세례에 관한 교훈(요 3장)은 그리스도교 세례의식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베풀어지고 있으며, 또한 구의 만찬에 관한 가르침(요6장)이 그 제도 제정의 신성한 분위기로부터 이탈되어져 있다. 이로써 교회의 참되고 중요하며 성례전적인 증언이 성립할 수 있었고 나아가 예수의 인격 및 사역에 중심을 둔 성례전 고유의 순수한 역사적 기초를 부인함으로써 아니면 이교적 신화들의 풍토에서 연유한 주술적 사상들을 그들 속에 불어넣음으로써 성례전의 그릇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자들에 반대하여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Bauer pp95-103,

E.F Scoot op. cit. pp 122-32:

E.C.Colwell, and E.L. Titus, The Gospel of The spirit: a study in the Forth Gospel(New York, 1953), pp 50-2

등이다.

3) 교회의 종말론적 교훈에 관한 변증

Barret에 의해 주장된 견해로서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쓴 것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오도된 사상을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이 자주 거론 된다.

Barret에 의하면 ‘파루시아’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기대들은 그 성격상 묵시적이었다고 Barret는 주장한다. 공관 복음서들이 보여주듯이 원시 교회는 부활 직후 절정적이고도 위엄에 찬 그리스도의 현현(appearing)을 대망하였는데, 특히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살아 있을 동안에 그러하였다. 그러나 기대 되었던 파루시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예루살렘의 함락에 의해서도 앞당겨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약 50여년간 지속되어온, 세상의 종말에 대한 기대의 과정이 더 이상 무한정 연장되어질 수 없게 되었다. 전에는 참고 이겨내야 하는 잠정적인 기간이었던 것이 이제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의 적극적 의미’를 요구하였다. 즉, 종말론은 더 이상 ‘위기’의 성격만을 언급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는 부분적으로는 구원의 ‘현재 시상’에 그 고유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또한 그리스도의 급박한 재림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고집하고 있는 자들의 우매성을 응답하기 위해서 그의 복음서를 썼다고 매듭 짓는다. 결국 그리스도교가 존속할 수 있었고 실현과 소망의 그 특유하고도 신빙성있는 긴장이 유지 될 수 있었던 것은 종말론 사상에 대한 요한의 공헌에 적지 않게 기인하였다고 그는 주장한다.

4)이단에 겨냥하는 변증

이 주장은 상당수의 신학자들이 주장해온 바다. 앞에서 언급한 Scott, Strachan, BArrett, Bultmann, 등을 비롯하여 포오트나, 니콜, 쇼트로프, 등도 동일하게 주장한 바다. 제4복음서 기자는 요한일서의 기자와 마찬가지로 이단적인 영지주의 교훈에 대응하기 위해 붓을 들었다는 주장이다.

4. 예전적 용도로서

이 주장은 구약시대의 예배의 예전처럼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성가대에 의해 영창 내지 독창그리고 합창되어지도록 복음서 기자에 의해 집필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라니나 아일린 길딩에 의해서 주장되었다.

그러나 요한 복음의 기록 목적은 복음서 기자가 20:31에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이 표적들을 기록함에는 너희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하고 또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우리는 이 기록자의 진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제4복음서 기자는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고백하는데 중점을 두어 언급한다. 이것은 그가 가진 자료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거나 드러내는 중요한 자료들만 사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가 많은 사건들이 있었으나 이것만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독특한 의도를 가지고 제한적으로 자료를 선택하였다고 분명히 언급함에 있어서 그의 주장이 기록의 의도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Calvin 은 Ebion과 Cerinthus의 무신론적인 모독설에 대항하여 그릇도의 신성을 유지할 목적으로 그의 복음서를 기록했던 것으로 믿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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