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기둥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할일.........

생명있는 신앙 2009. 4. 2. 09:29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직장을 잃고 방황했으며,

꾸준히 인내하며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파출부를 하면서 어려운 가계를 꾸려 나가야 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습니다.

남편이 비록 무능하지만 항상 용기를 주었습니다.

가능성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환경은 변하지 않고 더욱 어려워만 갔습니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습니다.

여기 저기 여러 사람들에게 빛을 졌습니다.

각종 공과금도 납부하지 못했습니다.

자녀들의 학교 생활비용도 충당하지 못해 연체되고 있었습니다.

빛쟁이들은 연일 독촉하는 전화로 괴롭히고 일부는 찾아와서 괴롭힙니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두려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어떤 교회의 목사께서 이 여인의 딱한 사정을 아셨습니다.

목사는 여러날 기도 가운데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진 빛의 2/3정도가 되는 돈을 를 가지고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문 앞에 이르러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나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를 외쳤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사람이 없는 듯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되돌아왔습니다.

다음 날도 방문했습니다.

그날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삼일째도 방문했습니다.

 

목사은 그녀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해졌습니다.

목사의 생각에는 그녀의 가정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줄로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두렸으나 결국은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목사은 그 집에있는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전화 번호를 알았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전혀 받지를 않았습니다.

벨은 울이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없는지 전혀 대꾸가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사는 너무도 궁굼해졌습니다.

아마도 큰 위험에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주일이 지났습니다.

불쌍한 여인을 돕고하자는 마음은 식어지고 염려에 사로 잡혔습니다.

교회에 속한 한 성도의 가정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여 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는 아무도 모르게 그 성도의 가정을 돕기로했습니다.

불쌍한 여인을 돕기로한 금액의 2/3을 성도의 가정에 도와 주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준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정을 도와 준 것입니다.

몇일 후였습니다.

목사님이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던 길에 불쌍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파출부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목사는 너무 반가웠습니다.

 

“아주머니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어디 가셨습니까?

교회의 성도도 아니지만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께서 자기에게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에 나갈 형편이 못됩니다.”

“그래요 그것보다 먼저 지난주 아주머니를 뵙고자 했습니다. 우선 어디 갔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없습니까?“

“지난 주요?”

“예”

“저는 아무데도 간적이 없습니다.”

“제가 집을 여러번 찾아갔었는데 안계시던데요?”

“예 지난주는 여러 사람들이 저희 집에 왔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빛을 받으려 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하고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어요.

 

이 여인은 자기에게 다가 온 행복을 누리지 못한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목사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너무도 큰 경험을 했습니다.

목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목사의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아주 큰일을 행하셨는데 사라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해놓으신 그 일을 말이다.”

 

2,000년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사망의 고통 가운데 방황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을 괴롭히는 사망을 풀어 해쳤습니다.

사람들을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으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셨으며,

삶의 고통을 풀어 주셨습니다.

 

사람들 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고,

모든 사회도 깨끗이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간의 죄도 해결해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들간의 문제도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으나,

그 문제도 해결 하셔서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나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문제를 말하고,

걱정거리를 말할 수 있고,

근심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문제를 말할 수 있고,

자녀의 문제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받는데 아무것도 제약이나 조건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말할 수 있으며,

자기의 원통함을 말할 수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불화를 깨끗이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질병 가운데 고통을 당하며,

직장을 잃고 좌절하며,

밤이면 괴로움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슬픔이 그들의 생활이 되고,

눈물과 한숨이 그들의 삶입니다.

 

가정의 문제는 끊이지 않고,

싸우고 해어지며,

노인들과 자녀들이 버림받으며,

자녀들은 부모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고,

늙은 노인은 버림받아 슬퍼하고,

가정이 산산조각이 나고있습니다.

 

강도들이 늘어나고,

담장을 높이 쌓아야하고

철망을 둘러치고,

최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집을 지켜 보지만,

모든 것이 허사입니다.

한순간의 쾌락의 노예가된 젊은 이들이 늘어나고,

호기심은 젊은이들을 마약의 노예로 만들고,

돈을 벌기위해서는 어린이들조차도 무서운 일을 저지르며,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은 어두움이,

모든 사람들 위에 뒤덮어,

사람들로 죄를 더욱 짖게합니다.

 

두려움이 몰려와 잠을 이룰수 없습니다.

고통스런 고독감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뭔가 뒤를 좇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존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자꾸만 뒤쳐지는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잠을 이룰수 없습니다.

두려운 세상입니다.

마음에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문제들을 분명히 해결해 주셨는데 말입니다.

자기를 도우려 온 목사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여인처럼,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전혀 모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마음에 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롬1:18)

믿을 수 없습니다.(요 8:23, 롬 10:10)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요 1:12)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문을 굳게 닫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맏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시 14:1-3)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셨다는 사실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지금 문제 가운데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말도 귀에 들려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질병도 치료하셨습니다.

인생의 문제도 해결하셨습니다.

장래의 문제도 해결하셨습니다.

외로움과 고독 억압의 고통을 해결하셨습니다.

근심과 괴로움을 씻었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오십시오.

예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알수 없는 기쁨의 샘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 올라,

당신을 기쁨에 젖어들게합니다.

마음에 평안을 얻고,

참된 자유를 얻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대로 오십시오.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주님께서 깨끗이 치료해주십니다.

고쳐주십니다.

문제를,

고통을,

질명을,

괴로움과 고독함을,

치료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할 그 죽음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갈2:20)

우리가 당해야할 그 고통을

우리가 아파야할 그 질병을,

우리가 짊어져야할 그 질고를,

십자가에 대신 지고가셨습니다.

그는 바로 이 일을 하시려고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그 사명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대신 십자가의 저주를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짊어져야할 그 고통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로서 났습니다.(요 8:23)

예수님은 무죄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사망이 예수님을 다스릴 권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할 죽음을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입니다.

하늘에서의 새로운 탄생입니다.

영원한 고통에서 해방을 받아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동일한 죽음에도 그 내용과 질은 전혀 다릅니다.

어떤이는 영원한 형벌을 받고

어떤이는 새로운 영생으로 태어납니다.

 

또한

우리는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수 없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괴롭히는 그런 고통속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질병에 걸리는 고통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까지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다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로 오십시오.

 

38년동안 질병에 고통을 받은 자가 있었습니다.

너무도 오랬동안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들도 그를 길거리에 버렸습니다.

그를 돕는 자는 아무도없습니다.

그가 누워있는 곳에는 많은 환자들이 모여있습니다.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기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 환자는 기적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기적을 가져가고 말았습니다.

사람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앙상한 몰골을 하고,

고통중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이 환자에게 예수께서 다가왔습니다.

“네가 났고자 하느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환자는 대답했습니다.

“예 낫고자 합니다.”

“그러나 나를 낫게해줄 기적의 현장으로 옮겨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지으시던 그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던 그 말씀으로,

만물을 불러내던 그 말씀으로,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38년 동안이나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하던 이 환자가,

예수님의 말씀에 즉시 자기의 자리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처럼 걸어갔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기적을 채험하지 못한 이 환자가,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네가 어떻게 걸어가느냐,

예수가 나더러 일어나 걸어가라 하셨다.

죽음만 기다리던 환자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것입니다.

환자를 괴롭히던 사단을 몰아내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다시 만드신 것입니다.

버림받은 사람을 다시 만드셨습니다.

그분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어떤 가족에 해결할 수 없는 불행을 건진 사건이 있습니다.

죽음에 빠져버린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무덤에 갇혀버렸습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몸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냄세가 납니다.

고약한 냄세가 진동합니다.

살이 썩는 냄세였습니다.

흙이 되어가느라 부패하고 있었습니다.

무덤속에서......

 

그는 나사로였습니다.

그에게는 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빠가 죽은 것 때문에 슬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여인들은 본래 온전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그들만을 남기고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들은 오직 오빠 하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오빠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때

멀리서 제자들과함께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던 예수님께서,

“자 죽은 나사로를 깨우려 갑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나사로를 깨우려 간다는 말에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사로가 잠들었으면 낫겟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말은 나사로는 이미 죽어버렸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느니라.”

“나는 나사로가 죽은 것을 기뻐한다.”

“그것은 너희로 믿게하려 함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도 성경의 내용을 다읽기전까지는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가셔서 섰습니다.

나사로의 여동생들이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세가 납니다“.

예수께서 “내가 네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막아놓은 무덤의 돌문을 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덤의 문을 열었습니다.

무덤의 문을 열자마자 사람썩은 냄새가 고약하게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무덤속에 누워있는 나사로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죽은 사람을 향해서 외치셨습니다.

사망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의 고통속에 파묻혀버린 사람에게,

지옥의 수렁속에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썩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생기가 다시 일어나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죽어서 이미 썩어가고 있던 시체인 나사로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수건을 동인체로,

무덤속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놀랐습니다.

유대인들이 보고 놀랐습니다.

구경하려왔던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썩어가고 있는 시채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유대인들 가운데 수근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큰일났다.

이자가 죽은자도 살리니,

큰일났다.

모든 백성이 저를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허수아비가 되고,

모든 자리를 내 놓아야하고,

백성이 없는 관리가 되고,

결국은 비참한 신세가 될것이 아닌가?

“안되겠다.”

“예수를 죽이자”

이렇게 결안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자리를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죽었던 나사로는 다시 살아서 오랫동안 동생들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죽음을 해결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바로 당신의 주인이십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부인병으로 고통당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얼굴은 창백해져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 병이 나을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질병이 깊고

하혈이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자기의 몸을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어느날 자기 마을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몸을 일으켜 마을에서 기다렸습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서 지팡이 하나로 지친몸을 지탱하면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햐얀옷을 입으신 예수님,

양치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어 짚으시고,

걸어오셨습니다.

얼굴의 광채는 햇빛보다 밝았고,

그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흰 옷을 입으시고,

누구도 흉내낼수 없는 권위를 가진 용모에,

서서 바라볼수 없는 존귀를 가지셨습니다.

 

제자들 보다

한발자국 앞서서 걸어오시는 모습,

만국 백성을 이끌고 오시는 만왕의 왕이 셨습니다.

왕중의 왕이

보좌를 향하여

걸어가시고

뒤를 호위하는 백성들이

왕에게 이끌려 오는 것 같았습니다.

 

서서 바라보는 것이 죄스럽고

감히 얼굴을 마주칠수 없으며

끌리는 발끝을 보는것만도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만왕의 왕이

백성들을

통치하시려

들어오고 계셨습니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내 모습을 감추어야 하나

여인은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어찌할바를 알지 못하는 여인은

예수께서 지나가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숨을 죽이고 몸을 숨겼습니다.

도저히 앞에서 볼수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속이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는 뒤로

다가갔습니다.

죽는 힘을 다해 예수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가만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져도 자기가 나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기에

제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뒤에서 옷자락을 살짝 만졌습니다.

아주쌀짝.

아무도 모르게

만진 그 순간!

하혈이 멈춰졌습니다.

흐르던 피로 축축하던 아랬도리가

상쾌하게 마른 것 같았습니다.

큰큰한 액체의 느낌도,

불쾌감도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병이 나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가던길을 멈추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귀가 감당할 수 없고,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맑고 위엄이 있는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이 음성에 천하가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의 물들도,

산의 나무들도,

나무사이를 가르고 다니는 바람들도,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는 여인을 향하여 주목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주목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심판의 도끼를 쳐들고 있고,

바람은 날려버릴 것처럼 덤벼들 기새였으며,

땅은 입을 벌리려하고,

나무들은 무서운 회초리로 변해가고,

돌들은 던져질 듯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직까지

사람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그 음성

심판과 호령의 음성이

무섭게 내리쳐 불렀습니다.

“누가 나를 만졌느냐?

 

여인은 큰 잘못을 저지를 것입니다.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훔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사람들이 미나이다.”

“어서 가셔서 죽은 사람을 살려야죠”

 

사실 회당장의 딸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녀를 고치려 가는 중이었습니다.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불안했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죽어버리면 어떻하나 하고 더욱 근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다른 일에 신경쓰시지 말고 어서 가시기를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시기 싫어서 딴전피우는 사람처럼 느긋하셨습니다.

한시가 바쁜데,

누가 내옷만졌느냐 따지는 것입니다.

옷을 만진 여인은 불안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자기의 병을 고치려 했는데 들켜버린 것입니다.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나아갔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몸을 숙이고 낮게 조아리며 말했습니다.

“제가 만졌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책망 받을 것으로 두려워했는데,

예수께서는 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기뻤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질병은 완전히 치료를 받았습니다.

말씀으로 완전히 치료하셨습니다.

 

한편 그때,

몇 사람의 하인들이 회당장에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전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인지 다른사람들에게도 알려졌습니다.

회당장의 딸은 죽어버렸다는 하인들의 전갈이었습니다.

회당장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가는 길이었는데,

여인이 옷자락 만진것으로 지체하다가

딸이 완전히 죽고 말았습니다.

같이 가던 회당장은 절망이었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어두웠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망스러웠습니다.

얼른 가서 자기 딸을 고쳐주고,

돌아와서 이 여인을 고쳐주셔도 되는데,

죽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옷만진것 때문에 따지신 예수님이 속으로 못마땅했습니다.

회당장은 너무한다는 생각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회당장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회당장의 딸이 죽은 것 때문에 슬퍼하고 곡하며 울었습니다.

우는 사람들을 불러와서 더 크게 울어댔습니다.

원망의 소리로 울어댔습니다.

집이 떠나가라고 울어댔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는 도중 옷만진 여인에게 간섭하는 일로 딴전 피우는 바람에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딴전 피우지만 않았어도 회당장의 딸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평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곡하며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물러가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사람을 잔다고 말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우는 사람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회당장의 딸은 분명히 죽었습니다.

영혼이 사람에게서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소녀를 얼마든지 살릴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자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소녀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일어나라”(달리다굼)

죽어버린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깜짝놀랐습니다.

죽어버린 소녀가 일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어떤이들은 눈을 비볐습니다.

어떤이들은 자기 몸을 꼬집었습니다.

자기가 꿈꾸고 있지않나 확인했습니다.

죽은 소녀는 일어났습니다.

회당장 앞에 와서 인사하였습니다.

소녀는 행복했습니다.

죽음에서 눈을 뜨고 가장먼저 본 것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소녀는 그 영광을 직접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보았습니다.

나도 이런 행복을 누렸으면 합니다.

 

여리고에 소경이 있습니다.

둘 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해야 먹고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두 소경이 강통을 놓고 “한푼줍쇼” “한푼줍쇼”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가 하도 신기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소경의 눈을 고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창세 이후로 없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소경들은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소경이 말을 걸자 사람들은 죄인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소경은 다시 자기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주고 받았습니다.

“소경이 눈을 떴다고 했지”

“그래 분명히 그랬서“

“누가 눈을 뜨게했다는 거야”

“예수라는 사람이 했다잖아”

“우리도 그 사람을 만나면 눈을 뜰수 있을까?”

“어떻게 예수를 만날 수 있지”

“이렇게하면 만날 수 있을거야”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은 매년 예루살렘에 제사하려 오잖아”

“그때에 이 길목에서 지키고 있으면 분명히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만나지”

“우리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남들보다 더 좋은 귀가 있잖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듣고 있어야지.”

그때부터 소경들은 구걸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예수님는 매년 한번은 예루살렘에 들리셨습니다.

친히 하나님께 제사하려 오셨습니다.

이번에도 그 때가 되었습니다.

소경은 이때를 맟추어 날마다 길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자기의 눈을 고침을 받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날마다 기다렸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가까이 오시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예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짐작할구 있었습니다.

두 소경은 두귀를 더욱 쫑긋하고 기다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주 가까이 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쯤 지나갔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웅성 웅성 많은 발자국들이 지나갔습니다.

유난히도 많은 사람들이 소경의 깡통에 동전을 던졌습니다.

쨍그랑!

쨍그랑!

두 소경은 순식간에 던져지는 동전 소리에 연신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졌습니다.

일행은 바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경들은 그것도 모르고 동전소리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동전소리에 정신이 팔려버리고,

잠깐동안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몇발작을 지나갔습니다.

저만큼 지나갔습니다.

뒤에 따라가던 사람들이 수근수군 말했습니다.

저분이 예수래!

오던길에 병든자들을 고치셨대!

소경은 깜짝 놀랐습니다.

뭐 예수가 지나갔다고?

소경은 벌떡일어났습니다.

동전 깡통을 엎어졌습니다.

소경이 일어나느라 소란스러웠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셨다는 말에 소경의 눈은 더욱 깜깜해졌습니다.

소경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사람들이 소경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제자들이었습니다.

“죄인인 주제에 조용히 해라”

더욱 소리를 쳤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제자들은 더욱 겹겹히 막아서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아섰습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일생 일대의 가장 귀중한 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돈을 몽땅주었습니다.

소경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결심을 빼았았습니다.

사람이 예수님께 가는 길을 막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유혹하여 순간 예수님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기회를 잃고나면

더욱 견고한 벽이 생깁니다.

바로 사람들이 예수께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소경들이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든지

저만끔 지나가시던 예수께서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슨일이냐”

“누가 나를 부르느냐?”

한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소경들이 달려들어 선생님을 부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오너라”

“아니 저들은 죄인들인데요? 지금 제사하려 가는 중 아닙니까?”

제사를 드리려면 정결해야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데리고 오너라”

제자들이 소경을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왔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왜불렀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뭣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부르면 바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왜불렀느냐?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할 수도 있고 하지 못할 수도 있느니라”해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느니라, “뭣해주기를 원하느냐”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부르기만 하면 예수께서는 “뭣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소경은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뭣 해주기를 원하십니까?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십시오?

마음속으로 말씀하십시오.

주님께 말씀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그 순간 두 소경의 눈은 열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게 된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었습니다.

처음 본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는데 처음 빛을 보았고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이 소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예수님.

그 모습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영원히 기억할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런일들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여 주십니다.

사단의 괴로움을 벗어나고,

어두움의 고통을 풀어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모든 일은 어디에서 올까요?

사단에게서부터 옵니다.

사단은 사람을 범죄하게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어둡게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합니다.

영혼을 사냥합니다.

마음을빼앗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사단을 결박하여 흑암에 가두웠습니다.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매여 있습니다.

온갖 문제와 고통속에 매여있습니다.

반드시 심판에 처해집니다.

 

이제 사단에게서 나오십시오.(행 26:18)

흑암의 권세에서 나오십시오.

그 질병에서 나오십시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질병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있으면 벗어납니다.

질병에 머물러 고통당하고 있으면 그 고통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해 놓으셨습니다.

어두움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이것을 믿고 어두움에서 나오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발걸음을 움직여 여러분에게 다가왔습니다.

 

 

'구름기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라도.............  (0) 2009.12.04
나 이제 쉬고 싶습니다.   (0) 2009.12.03
교회의 참된 표지  (0) 2008.12.28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  (0) 2008.08.09
현명하지만 답답한 국민  (0) 2008.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