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요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
본유적 지식과 사람의 생명
생명은 ‘생물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는 힘’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듣습니다.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는 힘’이라 한다면, 그 힘이 생물 자체에 내포한 것인지 아니면, 생물의 외부에서 작용하는 어떤 능력에 의해 힘이 전달되어 움직이도록 하는 것도 포함하는지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내 놓고 있는데, 플라톤은 생명을 곧 영혼이라고 정의했고, 생물학자들은 생물을 움직이는 힘, 원료를 태워서 열을 발생하고 발생한 열을 이용하여 힘을 일으키도록 하는 작은 세포에서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작용으로부터 생명의 힘이 발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수억개의 세포가 쉬지 않고 핵반응을 하고 원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고 움직이도록 하는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의 원천은 생명의 원료가 되는 무기물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것이므로 무기물과 유기물의 혼합으로 시작되었다는 가설과 생명은 유기물질로부터 생물의 연속된 단계를 거처 진화를 거듭하여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1982 J,B,S 홀데인이 시사하고, 1936 A, J. 오파린이 체계를 세원 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이 충분하지 않았으며 명확하게 정의하기에는 어렵다는 단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육체는 생물체로서 실체이고 감성의 주된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지, 정, 의가 있고, 영혼은 비 생물체로서 실체이며 지성이 주된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지, 정,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실체가 결합하여 사람으로서 한 인격체가 되었으며 이를 ‘생령’이라고 하였고, 사람이라는 생명체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생명체보다 가장 완전하게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단정될 검증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치부될 수 있는 이 진리를 통해 생명의 시작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얻게 할 것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 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일반 피조물들의 생명과 구별되게 만들어졌습니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기본적인 생물체로서의 생명에 관하여는 과학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결과물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주장들이나 체계들은 정확하지 않아도 사실이고 앞으로 계속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정확한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에 관해서는 과학적인 연구와 증명을 통한 검증으로 결코 확인할 수 없는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은 과학적인 증명이 불가능한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여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영혼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사실을 정확하게 과학이 밝힐 수 없고, 둘째는 영혼이 없는 사람의 생물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나 짐승이나 혹은 식물과 같고, 영혼을 지니고서는 식물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짐승과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사물에 관하여 창조적인 지적인 기능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계속된 진화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생명이 있는 자와 생명이 없는 자로 구분합니다.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1서 5:11)고 말했습니다. 생명을 가진 자는 아들이 있는 자, 이고 생명이 없는 자는 아들이 없는 자입니다.
이 아들은 요한복음 1장 1절이나 요한1서 1장 1절에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고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말합니다.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만난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목격하였습니다. 사도요한에게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 주셨고, 사도 요한은 그것을 본대로 기록하여 기록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이때 사도 요한에게 보여진 하나님의 아들은 보좌에서 나오시는 성자 하나님이심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말씀이시면서 그 말씀이 곧 생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Logos’에 관하여 명상하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음성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요한의 증언을 확실히 믿고 창조세계에 들어오신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이 사람의 귀에 들린 음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시간에 거하시는 음성으로 들리시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일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단계적인 말씀이 나열되듯이 전해 질수 없습니다.
“있으라” 라고 말씀을 하셨다면 ‘있’은 ‘으’라고 말하기 이전 시간에 하신 말씀이고 ‘으’라고 말씀하셨으면 ‘있’은 이미 과거가 되는 것이 창조 세계에서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앞 글자가 기록 되었고 다음 글자가 기록 되는 시간적인 사이는 분명히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시간에 속한 말씀을 하셨다면 그것은 영원에 속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은 세상에 보냄을 받은 말씀인 것이 분명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에 있어서 시간의 과정이 없이 한번에 영원히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영원히 말씀하여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교제하시며 말씀하시고 아담으로 살게 하시는 그 언어는 보냄을 받은 것이지 영원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던 그 하나님의 음성,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시내산 정상에서 말씀하시던 하나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요단강에서 하늘이 열리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말씀하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음성은 과연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까?
먼저 하나님의 음성과 초기 사람에 관해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덤속에 잠자는 나사로를 불러내시는 예수님의 음성,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아담이 어떻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가? 에 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보냄을 받은 말씀을 사람의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치료하시고 말씀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엄밀히 하자면 말씀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말씀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곧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므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사도 요한이 말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생명이 되신다1)고 선포 하셨으며 친히 낮아 지셔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말씀하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2)
사람에게 생명이 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때부터 이미 보냄을 받아 사람과 함께 계셨으나 사람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완강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것이 행위 언약에 나타났으며 그 행위언약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었다면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신 것이며 이 말씀은 창세 때부터 보냄을 입고 이 세상에 계셨고 사람의 생명이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였으나 사람과 같이 육체를 입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를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으로부터 단절되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은 말씀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사람과 함께 계셨으나 그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어질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 아담을 일으키실 때 무덤 속에 나사로를 부르시듯이 말씀하심으로 부르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본유적 지식은 그 말씀을 이해하며 받았고 그 받음으로 말씀을 알았으며 입으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아담의 영혼 속에 받아지는 그 순간 아담은 활동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영혼에 두신 하나님형상에 있는 지성에 있는 지식과 언어를 결합시켰고 처음 말씀을 받음으로 지식에 속한 모든 말들이 아담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이었고 이 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에 의해 음성으로 말씀되어진 피조세계에 들려진 소리로 된 음성입니다. 이 음성이 있어서 아담은 하나님께 응답하거나 말을 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생명이신 말씀이 사람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말했던 것입니다.3)
무덤속에서 잠자고 있는 죽어 있는 육체인 나사로는 생명이 이미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영혼은 존재합니다.
아직이 아니라 영원히 그 영혼이 존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존재로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육체와 함께 옷을 입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죽음에 있고 생명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지로 그가 죽은 것은 육체와 영혼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육체가 생명을 잃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이것은 처음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말씀하신 생명이신 말씀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동등인 말씀이 예수님으로 부터 말씀하여 진 것입니다.
생명, 곧 영원전에 거하시는 그 생명이 발하여져 사람에게 들어가신 것입니다.
지음을 받은 사람이 아직 생명 활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셔도 아직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 아무도 지음 받은 사람이 생명활동을 시작하는 그 시간을 살펴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인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작업장을 들여다 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작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를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 작업장에 있는 사람은 만들어졌고 영혼이 결합되어 하나가 된 완전한 상태가 되었는데 생명 활동을 못합니다.
이유는 완전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한 가지가 아직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에 이런 상태가 아니라 이미 활동하는 존재 상태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에 활동을 하실 때 한 관원의 딸이 죽었습니다.
그녀에게 생명은 떠났습니다.
이것을 죽은 상태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영혼이 분리된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이 분리되는 그 상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왜 육체로부터 분리되는가요?
영혼은 마음대로 결합되기도 하고 분리 되기도 하는가요?
마음대로.........
영혼이 분리 되려면 그 사람에게서 생명이 떠나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생명, 육체, 영혼을 보게 됩니다.
지음을 받았으나 아직 생명이 없으면 살아있는 활동하는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어 넣으셨으나 생명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직 그 생명은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이신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행위언약이라고 말하는 말씀과 같지 않습니다.
행위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본유적 지식은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위언약과 본유적 지식을 결합하여 하나로 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내셔서 사람에게 있게 하셨고 사람은 그 말씀에 의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행위언약은 사람의 생명을 주는 말씀이었으므로 얼마간은 여러번 시험에도 잘 견디며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만들어졌고 그 여자에 의해 넘어지게 되었을 때 사람은 본유적 지식조명하여 생성된 지식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자기의 지성에서 생성된 거짓된 지식을 따르게 되었을때 하나님이 말씀인 사람의 생명은 떠나고 죽음이 다가왔으며 본유적 지식은 상실되어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다행이 본유적 지식과 생명이 활동하던 시기에 영혼이 얻은 언어와 또한 육체의 오감으로 얻은 지식이 지성에 새겨졌고, 특히 본유적 지식에 의해 이해된 지식이 지성에 새겨져 있어서 희미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뿐이었는데 그 지식으로 창조 기사에 기록된 것 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en passed down of the knowledge. 지식의 전승 (0) | 2011.02.12 |
---|---|
본유지식의 상실, (0) | 2011.02.11 |
Knowledge and Language . 언어와 지식 (0) | 2011.02.06 |
The Creation of Knowledge, 지식의 발생 (0) | 2011.01.28 |
마음! (0) | 2010.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