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나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주시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는 앞에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만날 수 없는가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그런데 주님은 내가 침상에서 흘리는 눈물을 다 받으신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없는 덩그러히 혼자 서있는 저를 만난 주님은 저를 향하여 다가오시더니 말씀했습니다.
잘했다.
'무슨 말씀을요.'
'부족함이 끝이 없는 이 죄인이 어떻게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밥먹어라.'
'예배드려야지.'
그리고 아들과 함께 어디론가 갔습니다.
예배시간은 멀었고 집을 다녀오자니 멀었습니다.
그때 저는 눈을 떳었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죄의 열매였습니다.
정욕의 열매였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에 너무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를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하와하 하는 말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4:1)"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리만을 말하는데 그 진리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에 진리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와의 말만을 집중하여 본다면 그 말씀은 진리가 아니라 하와가 꾸며낸 자기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한 것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감추어진 진실이었습니다.
이 진실을 살펴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창4:8)
이 사건은 하와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말을 부정하는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는 것은 득남의 모티브를 하나님께 두었으나 이것은 하와의 마음에서 바라는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오히려 가인의 인생은 그가 낳은 아들은 여호와가 모티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읽을 때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여러부분 감추어져 있씁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만 그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 바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게 되도록 씌어져 있습니다.
하와의 말대로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면 그의 행위가 그 말을 인정해 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와의 말을 멸시하게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두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가인이고 다른 하나는 아벨이었습니다.
이들이 삶을 통해 자신들의 탄생의 모티브를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아벨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탄생하였으나 죄인이고,
가인은 아쉽게도 아담과 하와가 정욕에 의해 탄생한 죄의 열매였습니다.
내가 바로 죄의 열매, 정욕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정욕에 빠진 그 순간을 저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열매로 남게 하셨습니다.
정욕의 열매의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멸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 같은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 가인을 향하여 죄를 짖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말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합니다. (신12:8)
왕이 없으면 그들은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삿 21:25)
오늘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가인의 예배와 전혀 구별이 안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때 하나님의 마음은 안중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견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한마디로 가인은 죄를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였습니다.
그가 아벨을 쳐죽입니다.
미운것입니다.
싫은것입니다.
자기의 판단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도저히 자기와 같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인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득남한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정욕의 자식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까지 우리가 가인과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가인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캄캄한 흑암뿐입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를 도와줄 존재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그길에서 건져줄 존재는 없는 정욕의 자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종들을 보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모티브로 이땅에 오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를 죽이고 말았씁니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와 달랐습니다.
말하는것,
행동하는것이 달랐습니다.
가인과 아벨같이 구별되었습니다.
가인은 악인이고 아벨은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아들이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 같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죽었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살아 났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크게 후회합니다.
우리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내가 이아들을 보낸 것을 믿고 그의 죽음이 너희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용서하겠다고 하셧습니다.
나는 정욕의 열매이며 죄의 열매였습니다.
캄캄한 지옥과 뜨거운 형벌을 예비받은 상태로 태어난 죄의 열매였습니다.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고 나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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