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어두워진 마음(롬 1:21)

생명있는 신앙 2013. 4. 5. 05:10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며 오히려 그 생각히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 졌나니(롬 1:21)

 

사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하여 언급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복음을 접한 이방인들에 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자주 언급해 왔습니다.
타락한 사람과 복음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한 사람, 영혼에 복음이 심기운 사람, 복음이 자라나 성화된 사람, 이렇게 구별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구별한 자체를 사람에 대한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지식으로 체계를 정리하셨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성경을 통해서 말하는 표현이 위의 4가지 방법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사람의 정채성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옳바른 성경적 방법이라고 말하려고 합니다만, 성경에서 제시한 또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따르는 것도 나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좋은 이해 방법이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의 말을 깊이 묵상해 보면 하나님을 아는 이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복음을 접한 사람이거나,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자기지식으로 판단하여 인식한 가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데 하나님에 대하여 존경심도 없고, 감사치도 아니하므로 한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예의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으며, 구체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관심이 있지만, 성경에서 표현한 하나님에 관한 두려움이나 영광스런 광체로인한  엄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모든 상황에서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자기지식에는 하나님의 엄위와 영광을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의 결함과 무지 때문에 엄위와 영광의 반응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만 엄위를 느끼지 못하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만약 온전한 지식 곧, 진리의 지식이 그의 영혼에 있고, 그 지식의 조명을 받는 다면 하나님의 엄위와 영광을 인식하지 못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지식에는 엄위와 영광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관하여, 대하여 모든 지식이 있어 영혼의 지성을 조명함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식은 인류의 조상이 타락하기 이전에 가졌던 하나님의 형상안에 있는 본유지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대신할 지식이 주어졌습니다. 그 지식은 복음이고, 복음이 사람의 영혼에서 그를 조명한다면 하나님의 엄위와 영광을 조명하기 때문에 엄위와 영광을 지각하여 인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자세가 달라지게 됩니다. 

사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데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다라고 말 할 때에는 그가 하나님을 알고 있는 지식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가 이말을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에게 공통으로 전하는데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들은 복음을 복음대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가인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자기지식으로 복음을 이해만하고 그들의 영혼에 심겨져서 복음에 의해 새사람이 된 사람이 아닌 옛사람에게 복음이 더해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영혼에서 일어난 지성작용이 그 사람 자신의 참과 거짓을 구별짓게 하는데, 그 영혼에 복음이 심겨진 사람과 복음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한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고 식사시간 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 엄위,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의 깊이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어본적이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심으로 우리는 먼지와 같다는 감정을 자주 느껴집니까?

우리의 생명이 그분의 허락이 아니면 먼지로 부숴지는 존재의 무용함을 이해됩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우리가 설 수 있는 사람인지, 무릎을 꿇지 않고서는 그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내기 조차 부끄러운 존재라는 것을 인식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런 지식을 결코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내던져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한 순간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우리의 손이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고, 그의 살을 뜯어먹고 피를 마셔야하며, 저주스런 죄를 그에게 뒤집어 씌우고 채찍으로 그를 때리고 창으로 그의 옆구리를 찔러야 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피를 흘리게 해야 하는 우리의 그 악독한 행위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인자입니다. 
하나님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죽인 죄에 대한 책임은 무엇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설령 예전 우리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행위에 대한 용서를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죽인 그 죄에 대한 사함을 결코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하나님을 죽인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믿음 뿐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영혼에 당신의 말씀을 뿌리시고 싹이 돋아나게 해 주십시요.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십시요.

우리는 주앞에 먼지와 같사오니 우리에게 은혜를 비춰주십시요.

타락한 본성을 물려받은 우리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그 목적에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아멘

 

2013, 0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