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찌니라(롬1:20)
사도는 이제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에 관하여언급했습니다. 이미 19절에서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보이셨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저희는 1장 16절부터 언급된 믿는 자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고 이 믿는 자는 이스라엘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대에 속한 사람들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구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최초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복음으로 회복되어 복음을 믿는 사람들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 과 신성이 분명히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사도가 예전 유대교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지식이었습니다.
사도는 이미 이지식을 충분히 경험하였고,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알게된 복음으로서의 새로운 삶이 성도 가운데에서도 폭넓게 나타났을때,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분명한 인식은 자기 안에서 경험되어졌고, 심지어 그가 사물을 보았을 때, 그것들에게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에 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속사람인 영혼안에서 일어난 작용을 살펴 보면, 다메색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적 사실을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마음에 심기워지게 되었고, 그 복음적 사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적인 삶과 부활로 인해서, 율법을 중심으로 견고하게 자기를 세워왔던 모든 빛이 없는 어두운 지식들과 다른 또 다른 생명이 자기안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의 영혼에서 비취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은 사도로 하여금 옛 사람의 상태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했고, 그 사람은 거짓되었고 왜곡된 진리인 생명이 없는 거짓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본문을 통해서 개혁교회가 붙잡고 있는 사상이 무엇인지 말하려고 합니다. 이 사상을 말하기에 앞서 개혁교회는 이제 스콜라철학의 옷을 벗어던지고 알에서 깨어나와 순수한 복음으로만 성장한 장성한 분량의 사람으로 나타나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사도가 아브라함부터 예수그리스도때까지 선택받은 이스라엘로 역사를 몽학선생(갈 3:24~25)의 세대로 규정하듯이, 종교개혁 이후 오늘까지 스콜라 철학이 복음을 위하여 헌신해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시대에는 복음이 인간 사상의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복음이 사람들의 영혼에 심겨졌고 성령께서 사람의 영혼을 조명함으로 사람들 각자가 하나님에 관한 분명한 자기지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복음은 사람의 영혼 안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조명 되었고, 조명하는 그 빛을 사람 안에서 사람의 영혼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사람을 밝혀주는 상태가 되었는데 이것은 가인과 같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처음 복음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졌을때는 사람이 복음의 조명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가졌으나, 복음이 영혼에서 나와 사람 밖에서 조명하게 되자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런 결과들로 복음은 왜곡되게 해석되어졌고, 결국 복음과 사람과의 관계는 점차 멀어졌고, 복음의 빛이 희미해지고 말았을 때 교회에 깊은 어두움이 덮히고 혼란스러움과 그리스도에 대한 배격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어두움이 깊은 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신 이방인의 수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성령께서 복음의 빛을 다시 비취셨고, 종교 개혁이라는 새로운 씨앗에 교회를 담아두기를 기뻐하셨는데, 이때부터 교회에는 순수 복음 보다는 스콜라철학에 감싸인 복음을 객관적으로 사람에게 조명하여 교회를 새롭게 해 온 것입니다.
이 사상에서 교회는 계시 의존 사색이라는 사상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계시 의존 사색이 스콜라 철한에거 온 사상은 아닙니다. 이 사상은 오늘날까지 개혁교회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이를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교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한때는 이 사상으로 인하여 엄청난 피흘림과 고통속에서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겨온 많은 선배 신앙인들의 휼륭한 정신에 감동되었고, 그들이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기 각고의 피나는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자기와의 싸움을 했었는지 그들의 고백들을 들을 때 존경의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엇습니다.
영혼안에 심겨지지 않고 하늘의 해와 달 처럼 밝에서 비춰주는 이 복음의 조명을 아래에서 어두운 죄의 사람을 얽누르기 위해 모진 고난의 날들을 보내며 자기를 이기기 위해 몸부림친 청교도 개혁신앙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신앙의 고귀함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경건하게 살기 위해 옛 자아를 억제시켜야 했으며, 그를 바꾸고 새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재옷을 두르고 금식하며 자기를 죽이며 그리스도를 닮은 복음의 사람으로 길들이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복음시대때 부터 말해 왔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창세로 부터 그 의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사도의 말에 의하면 저희속에 있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복음이고, 이복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이것을 만물이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는 계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하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시기 때문에 일반 은총이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개혁교회는 사도가 전하는 복음에서 기독교적인 인식에 관한 많은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볼수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계시를 일반 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별합니다.
특별계시는 성경을 기록하도록 영감하시는 것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현현으로서 성부 하나님의 현현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부활을 통한 모든 생애, 그리고 보혜사 성령의 직접적인 구원사역에 속한 사역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반 계시는 자연적인 현상에 나타난 모든 존재와 역사, 즉 창조 자체를 포함한 모든 계시를 말합니다.
이렇게 계시를 중심으로 본 개혁교회의 사상이 최초 인류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드러낸 특별계시에서 큰 딜레마에 빠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사람인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분명히 인식하도록 하셨습니다. 죄를 경고하시기도 하셨고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인식하는 하나님은 자기를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다메색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울과 비교해 보아도 가인에게 주어진 계시가 가인 안에 심겨져서 가인의 지성에서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을 가진 지식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인에게 나타나 조명하고 가인은 그 계시를 자기의 지식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외부에서 비춰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사도의 영혼안에 심기워져 사람의 지성을 밝혀 졌을 때, 지금까지 자기가 알았던 모든 지식들이 어두움의 지식임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에게 나타난 계시는 가인에게 믿음으르 갖도록 적용되지 않은 것을 볼 때 계시의존 사색에 대한 모호한 생각을 갖게합니다.
사도가 "창세로부터 그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이 만물에 보여"라고 말 할 때, 이 말의 의미에서 개혁교회가 말하는 계시의존 사색의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19절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저희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라고 말한 그 복음이 사람의 영혼 안에서 육체의 눈으로 보고 감각한 사물이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 되었을 때 조명하여, 사물에 관한 분명한 지식을 지성에서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인식하도록 하는 지식의 조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사상에서 복음은 사람의 영혼에 심겨진 씨앗입니다. 이 씨앗이 싹을 트이고 새 사람이 자라나며, 점차 복음의 사람으로 성화되어져 가는 것으로 옛 사람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사람이 새롭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진리로서 사람의 영혼을 밝혀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도록 조명할 때 이전에 복음이 심겨지지 않았을 때 자기지식으로 지식을 생성하던 것이 점차 복음의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바꾸어가는 것이 변화입니다.
그러나 가인에게 나타난 증거에 의하면 하나님을 진리이신 하나님으로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안에 진리의 지식이 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하나님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자기지식으로 판단하여 드렸고, 하나님에 관하여도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고 지역적 한계에 거주하시는 분이시며, 하나님과 같은 또 다른 다양한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다신론적 사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아벨은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알았으며, 자기의 존재가 형 가인에게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도 알았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가지고 자기의 죄가 가인으로 지옥가는 존재로 태어나게 했다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담의 죄를 공유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의 조명이 밝혀준 것이고 성령께서 아벨을 조명하였을 때 아벨의 영혼에 진리의 지식으로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동일하게 조명하여 각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셨으나, 아벨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태어난 사람인 반면 가인은 아담과 하와가 정욕으로 잉태하여 낳은 정욕의 열매이기 때문에 아벨에게는 진리의 지식이 영혼에 심겨지고, 탄생의 조건이 다른 가인에게는 비록 성령의 조명이 있을 지라도 진리의 지식이 심겨지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600년동안 이어온 종교개혁의 터전에서 우리의 영혼 안에 심겨지는 복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도가 말하는 것이고,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우리의 영혼에 심겨져서 우리 안에 새사람을 짓게 되면, 그 사람은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비밀들을 분명히 밝혀 보여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비밀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하므로 인식할 수 있게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심기우기 위해서는 명료한 진리의 복음이 선포되어져야만 성령께서 진리의 복음을 조명하시는 것이지, 명료하지 않은 복음 선포를 통해서는 가인처럼 하나님을 자기 지식으로 인식하여 설득 당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영원하신 신성과 능력에 관한 하나님의 존재도 자기지식으로 이해하는 오류의 지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아멘
2013,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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