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롬 1:22)

생명있는 신앙 2013. 4. 6. 06:26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롬1:22)

 

사람들은 자기들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의 정체성에 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가지지 않으면 사람은 우쭐하여 오만해지고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교만은 자기지식으로부터 지각된 인식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어떤 사고에 의해 무인도 섬에 홀로 살게된 사람은 처음 그 섬에 도착했을때에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생소한 환경에 서 있으니 그 섬에서 어떤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럽게 섬을 살펴보면서 섬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갖게 되면 어느정도 마음이 안정이 되고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완전히 알았고 이해했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무인도 섬이 작아보이고 자기의 손안에 두고 휘두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 섬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 섬을 지배하고 살고 있는 보이지 않은 존재가 있었고 항상 그를 살피고 있었지만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날뛰고 있었습니다. 그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지식이 그를 감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이 온 세상의 주인인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그 상태를 교만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사람의 모든 상태를 알고 사람의 안전과 행복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다. 사람이 그분 앞에서 숨길 수 없음은 그분이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을 놓았습니다. 숨을 쉬고 활동할 수 있는 준비는 되었으나 아직 자기 스스로 일어나서 활동하지 못합니다. 그가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어나야 겠다는 자기의 의지가 필요지만 아직 그의 영혼이 활성화 되지 않은 것은 영혼이 자기지식을 생성하지 못하였고 지각(영혼의 감성에서 느끼는 감각)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지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지음을 받은 그 상태는 모든 것을 완전히 갖추어져 있지만 영혼이 활성하지 않은 상태는 지각을 갖지 못함으로 의지가 없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 뭍으로 나와 헐떡거리는 상태와 같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의 육체에서 감각되고 즉시 영혼에 심겨지자, 하나님의 형상이 심겨진 그 말씀을 조명하여 자기지식을 생성하도록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지성에서 지식을 생성할 수 있게 된 것은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최초 사람이 지음을 받아 놓였을 때 그곳에는 이미 짐승들이 지음을 받아 살고 있고, 새들도 있었으므로 그들은 소리를 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아름다운 노래를 하였을 것이 분명하지만, 처음 사람은 아직 이런 소리를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활성화 되지 안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놓여 있는 사람이 주위의 소리를 들었으나 그 소리가 무엇인니 감각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의 육체는 다른 소리를 귀로부터 감각을 가졌고, 그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 들어왔고, 영혼으로 하여금 활성화 되도록 하나님의 형상에 비춰졌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형상이 비로소 조명의 빛을 발하여 영혼의 지성을 밝히자 영혼은 조명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피조물인 사람의  영혼이 활성화됨으로 지각을 갖고 인식을 가짐으로 사람은 자기의 육체를 움직여 활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지만 사람은 그 말씀을 그대로 지각하거나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본질상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사람은 육체입니다. 영과 육은 그 존재의 구조에 있어써 분명한 구별이 있기 때문에 영의 지식이 육체의 지식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지으실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으며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육체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식을 인식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로 살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안에는 본유지식으로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창조에 관하여, 사람에 관한 모든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의 영혼으로 지각되는 지식이 아니닙니다. 이 본유지식(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해 자기지식을 생성하고 그 지식을 지각하여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식을 주실지라도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지각을 가질 수 있는 지식을 생성하여야 하고, 그렇게 생성된 지식만을 지각하여 인식하는 것입니다.

영혼에 이런 지적인 작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한 사람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를 육체로 드러내게 합니다.   

이제 사람이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지식처럼 지각을 갖지 못한다는 지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식은 복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식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여 인식을 갖는데는 영혼에서 지식에 대한 지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혼이 지각을 가져야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의 지성이 많은 지식을 생성하였을지라도 영혼의 감성이 지각을 가지지 못하면 그 지식을 의지에 반영하지 못함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이 무슨말인가?하고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말에 관해서는 앞으로 차근 차근 로마서를 해석해 가는 동안 설명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혼의 감성으로 지각되지 않은 지식은 결코 인식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존재적으로 차이가 있는 하나님의 지식을 사람 영혼의 감성이 지각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나 모든 하나님의 지식은 그대로 영혼의 감성에서 지각되지 않으므로 지성에서 사람의 지식으로 생성하여야 지각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에게 자기의 지식을 인식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에 주셨고,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지식이 들어오면 이를 조명하여 사람이 자기지식을 생성도록 하고 생성된 지식을 영혼의 감성이 지각하여 인식함으로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형상은 깨졌으며 이로 인하여 본유지식까지 모두 사람의 영혼에서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존재를 시작하므로 부터 타락 이전까지는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해 지식을 생성하였으나,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깨어짐으로 더이상 조명해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이미 활동하는 상태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을 받지 못함으로 모든 지식을 지금까지 생성하였던 자기지식의 조명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상황과 환경, 또는 여러가지 조건이 다른 지식을 생성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조명을 받지 못함으로 사람이 생성하는 모든 지식에는 필연적으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타락으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진 비극적인 일들이 발생하는 원인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 형상의 조명을 받지 아니하고 지식을 생성한다는 것입니다. 이지식들에 함의한 무지와 결함은 사람을 반드시 오류에 빠지게 하고 이 오류로 인하여 고난과 고통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의 말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라고 말하는 의미는 하나님 형상의 조명을 받지 아니하는 자기지식의 조명으로 말미암아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으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 본바에 의하면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결코 지혜로울 수 없는 상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경험했습니다. 
2013, 0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