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그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죄인이라고 하지 않을 지라도 자기의 행위가 자기를 정죄하고 있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본문의 의미는 분명히 자기를 향하여 판단하지 않았는데 그 판단이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결국 판단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불리하고 불합리하게 하려는 의도로 한 것이지만 자기에게 돌아오는 판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를 “너희가 잘못 판단하였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런 너희의 판단으로 말미암아 너희 스스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성실을 다해 죄를 짓지 않으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가 잘못 판단하며, 자기의 판단이 그 자체가 옳지 않은 판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는 정직하고 바르며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자기가 판단하는 그 판단을 객관적인 판단에 하자가 없는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런 의식을 갖지 않은 상태로 판단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영혼의 지성에서 판단하여 전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억제하려는 노력을 하려고 할지라도 이미 판단되어진 지식이 자신 안에 있는 한 스스로 갈등을 갖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사람을 활동하게 하고 또 사람간에 공통으로 소통되도록 해주는 지식에 관하여 1)지식은 무엇이며, 2) 사람이 지식을 어떻게 가지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야수들과 다르게 감각적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지식에 의해 행동하고 타인과 모든 사물들과 또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인식하며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상대방을 인식하고 그에 관하여 판단하는 것이 사람 안에 있는 지식의 역할인데, 그 지식이 판단을 받는 객체에게나 또는 그를 보고 판단하는 다른 객체도 동일하거나 혹은 다른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행동을 수많은 사람들이 내용은 다르지만 같은 지식으로 판단하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지식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일치하게 작용하는 지식의 코드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지식이 사람에게서 자연적으로 생성하는가? 에 관하여 참고적으로 언급하였고 지식을 생성하는 사람의 영혼에 관하여 이미 어떤 답을 추론할 수 있도록 많은 설명들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미 그 답을 추론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이 지식이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사람이 지식을 사용하여 행동하는지, 아니면 지식이 사람을 사용하여 사람으로 활동하게 하는지 그 행동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본질을 찾아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지식이 무엇인가?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식으로 의식활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은 반드시 지식으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데, 자연주의자들의 말대로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지식을 가진 존재가 되었는가?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본유지식을 주셔서 사람이 지식을 인식할 수 있도록 자기지식을 생성하도록 한 것인지, 어느 것이 진리인지 확인할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자연주의 학문들이 교회 안에 깊숙이 파고들어와 교회의 교리까지 허물어뜨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오늘날 어린 신자도 아니고 신학적으로 부족하지도 않은 수많은 신학 전문가들이 과학과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허물어 버림으로 신비하던 신학이 쓸모 없는 학문의 부스러기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안에서 지식과 이성에 관한 분명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많은 신학자들이 자기가 배우고 얻은 허물어진 경계선에서 진리라고 조명된 지식을 신학이라고 교수하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사람이 지식을 가지게 된 동기에 관하여 자연주의자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최초 사람들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이 언어는 지식을 함의하고 문자로 표현됨으로 뚜렷한 지식의 체계를 갖추기 까지 많은 시간을 지나, 사회를 구성하고 그 속에서 서로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으로 변천하였고, 나아가 점차 진화하여 언어를 지식으로 표현하는 체계를 개발하여 전체가 하나의 지식 체계 안에 거하는 거대한 공동체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창조적 입장에서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최초 사람을 흙으로 빚으셔서 지어 놓으시자, 지음을 받은 사람은 즉시 지성활동을 하여 눈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고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지적인 감각을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이제 갓 태어난 유아가 아무런 경험도 없이 사물과 객체들에 대한 지식을 자기 안에서 스스로 표현해 냈다거나 아니면 경험을 통해서 지식을 창조해 내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지식의 본질은 분명히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지식을 사람에게서 제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할 까? 보나마나 야수와 같은 감각적인 존재가 되고 맙니다. 판단하는 기준이 감각이며, 생각을 하거나 사고하는 어떤 지적인 기능이 없기 때문에 감각에 즉각 반응하는 존재일 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고하여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으므로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항상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들어오면 다릅니다. 지식에 의해 드러내는 표현과 모습, 행동이 다릅니다. 과거를 생각하고 반성하며, 미래를 예측하여 준비하고, 야수와 같이 감각에 반응하던 사람이 지식에 대한 지각을 갖고 지식에 따라 행동하고 지식에 의해 희노 애락도 다르게 표현하며, 지식으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깊이 사고하면 지식이 사람인지 사람이 지식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이 둘은 분명히 구별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지식의 정체에 대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지적 작용으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코드로 움직이는 Internet Browser 처럼 사람은 하나의 지식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모니터와 같이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는 앉지만 거대한 하나의 지식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그 지식이 없으면 판단도 없고, 남을 왜곡되게 판단하지도 않을 것이고 비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지식은 분명 모든 사람에게서 생성되어 나오지만 그 것이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인가? 아니면 이 지식이 사람을 사로잡아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 되게 하는 지식인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사람이 어떻게 지식을 가지는가?
우리는 지식의 정체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지식을 가지는지에 우리 사고를 집중하여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 어디를 둘러 보아도 지식을 가르치는 곳은 있으나 지식이 어떻게 시작하였는지 그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는 곳은 없습니다. 자연론자들은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지식을 생산해 냈다고 말합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지식은 하나의 주체인 사람이 하나의 지식을 내고 다른 사람이 다른 지식을 내서 전체의 지식들을 낸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자기가 내지 아니한 지식을 서로 인식하는 것과 하나의 지식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비하며 어떻게 다른 조직으로부터 성장하여 자라면서 지식에 있어서는 하나의 체계를 가질 수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 지식이라는 어떤 독립된 정체를 인정하여 이 지식이 사람에게 적용 되도록 주어진 것이라면 아무런 의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의 지식이 저 사람의 지식에 들어갈 때 서로 자기지식으로 이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연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식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이해가 되고 객관적으로 어떤 통일 규칙을 갖고 있어서 모두에게 적용이 된다는 점에서 결코 자연주의 자들의 주장을 쉽게 동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살펴 볼 때 사람이 지식을 가지고 공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규정된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자연이 말하는 신비이며 도저히 풀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이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야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밝혀낼 수 없는 끝없는 미로에 서게 하며 답이 없는 신비스러움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식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사람에게 숨기지 않고 분명히 설명해 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 사람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야수들과 구별된 존재로 지으셨다는 분명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지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을 지라도 스스로 자기지식을 생산하여 인식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행동하도록 시작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담은 지음을 받은 상태에서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지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지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식을 주셔야만 했는데 그것이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28)" 라고 사람에게 처음으로 말씀을 하시자 그 말씀이 사람의 영혼의 지성으로 들어가 지성에 심겨지게 되었고, 영혼은 생명의 말씀이 들어오게 되자 즉시 들어온 그 말씀을 밝혀 조명하여 지성을 밝히지 지성은 말씀에 대한 자기지식을 생성하였고 생성된 지식을 감성에 반영하여 지각되게 하고 이것이 전인으로 반영되어 인식함으로 사람은 비로서 눈을 열고 세상을 보고 일어서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가 눈을 열었을 때 온 세상은 그의 육체로 감각되었고, 감각된 온 세상은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되어 그것들을 인식하기 위한 자기 지식을 생성하게 되었는데 그 지식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 안에 주신 본유지식의 조명으로 생성된 것입니다. 이 본유지식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이 담겨져 있는데 이 지식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지식임으로 직접 사람으로 하여금 활동하게 하는 지식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이 이 본유지식의 조명을 받아 사람의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지식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하였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인데 이 지식은 1) 하나님에 관하여, 2) 하나님에 대하여, 3) 창조에 관하여, 4) 사람에 관하여 모든 지식이 들어 있어 사람이 육체로 감각한 모든 것을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하면 그것을 조명하여 밝혀줌으로 사람이 밝혀준 대로 자기지식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하게 되자 하나님의 형상은 깨어졌고, 사람 안에 심겨졌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육체로 객관적인 모든 객체들에 대해서 감각하여 그 표상을 영혼의 지성에 반영할 때 표상을 조명해줄 지식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부득이 타락이전에 지식을 생성하여 가졌던 그 지식으로 조명하게 되었는데 이 지식으로는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완전하게 조명해줄 수가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과 환경이 있어 이를 무지와 결함으로 조명함으로 모든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불완전한 지식만을 생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 이후의 모든 사람의 지식은 진리로부터 심각하게 왜곡된 지식들을 갖게 되었고 이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왜곡된 지식대로 왜곡된 행동을 하게 함으로 타락 이후에 생성된 모든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죄의 본질이고 이 지식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는 필연적인 죄의 행위인 악행일 뿐이고, 타락 이후에 존재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와 선으로부터 심각하게 벗어난 지식만을 생성하므로 악을 향하여 기울어져 있습니다.
사도가 말한 바 "네가 너를 정죄한다"는 말은 진리의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 왜곡된 지식으로 판단한 그 판단이 정죄 받을 수 밖에 없는 왜곡된 판단이기 때문에 그 판단 자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준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3,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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