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무 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롬2:27)
사도는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기 않고 율법을 가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을 안타깝게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을 잘 알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율법과 할례를 다른 이방인들에 비해서 우월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향하여 불쌍하고 측은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로서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그 목적이 무엇인지 유대인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아무 구별이 없는 죄의 열매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단 하나 차이는 유대인들 가운데 일부는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의해 작정된 자녀들이지만 일부는 비록 율법을 가졌고, 할례를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이방인과 구별되지 않은 죄의 정욕의 자녀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작정된 아들과 정욕의 아들로서 유기자의 아들은 하나님만이 구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도 유기자들이 존재하지만 사람으로서는 아무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별을 가진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구성원으로 가입됨으로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함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말들을 통해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자기의 의지와 자기의 깨달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기워지는 역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들어 설명 할 때에도 가인은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조명하여 이해하였고, 아벨은 자기의 영혼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에 의해 하나님을 이해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었다고 말해 왔습니다. 또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후예인 에서와 야곱에게서도 가인과 아벨과 같이 동일한 역사가 구별되어 나타난 것은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는 역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전혀 구별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율법과 할례를 기준으로 이를 행하는 사람과 행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하여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거울처럼 보이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율법과 할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영혼에 관하여 말해 왔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미래의 존재에 대한 비관적인 판단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하여 완고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만물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과도 원수관계를 가집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를 허용하시고 그로 인하여 자신들을 태어나게 하시고 태어난 자신들에 대해서 아무런 보장도 없이 고통스런 지옥에 버리신다고 영혼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혼이 이런 감정에 대한 의지를 육체에 반영할 수만 있다면 육체를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파괴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육체와 영혼과의 소통을 완전히 단절하도록 하시고 육체의 감각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 아닌 것은 지각을 갖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사변적인 생각들에 배타적인 생각을 갖고 더 이상 글을 읽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변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이 사변이 주는 큰 유익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히 이 사변을 멈추지 말고 한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 보라고 권합니다. 저는 내속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변을 항상 괴로워하고 더 깊이 나아가는 것을 싫어하지만 이것은 복음의 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이런 사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않으면 결코 내안에서 지식을 가질 수 없는 지식이라는 것 때문에 내 영혼을 주님께 담대히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을 맡으신 주님께서는 나의 지성에 복음의 빛을 조명하여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도록 했습니다.
이 지식들은 내가 자력으로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내속에서 이미 알고 있는 지식도 아닙니다.
게다가 정통적인 교리로서 기독교회 안에 이미 출판된 책들에 있는 교리적인 내용들이나 혹은 이단이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교리에 포함된 교리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속사도 교부들이나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의 사상으로도 만들어졌거나 천주교를 반대하고 개혁교회를 일으킨 선배들의 글에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의 배경에 있는 사상이었던 것이고 이 사상들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질서화 조화에 벗어나지 않은 체계 안에 있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영혼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자주 언급을 하면 성경에 감추어진 배경에 관한 말을 자주 하게 되었고, 이 진리들이 사변처럼 들리고 전통적인 신학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들처럼 언급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읽을 수 있도록 하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서를 설명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다음 장에 나타날 의에 관하여 언급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개혁교회의 수많은 주장들을 다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잘못하면 제 얼굴에 침을 밷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말할 때 복음의 조명을 통해 생성된 지식들이 언급되기를 기대합니다. 만약 복음의 조명이 아닌 나의 지식이 성경을 이해하고 판단한다면 절대적으로 오류를 가진 지식들을 언급할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복음의 조명이 아닌 언급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복음이 성경을 조명하여 여러분의 영혼에서 지식을 생성한 지식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오늘의 본문을 복음으로 조명하여 해석하여 보십시오? 물론 의식적으로 조명하여 영혼의 지성이 생성한 지식과 조화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도전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휼륭한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는 것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조명의 방법을 인식해 보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바울 사도가 경험한 그리스도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메섹 도상으로 가야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박해자 사울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과 같은 율법 학자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증오의 눈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복음에 조명된 무 할례자들은 누구를 가르칩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무 할례자들을 이방인들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구성원들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조명을 받도록 복음 아래 가져와 보십시오. 복음은 이스라엘 구성원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는 작정으로 부터 벗어난 유기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이 리브가에게서 쌍태로 태어난 사람인데 서로 나뉘운 것을 성경으로부터 본 것처럼, 이스라엘 구성원이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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