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롬2;23~24)

생명있는 신앙 2013. 5. 24. 06:00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2:23)

 

뻔뻔스럽고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원인은 사람의 영혼에 심겨져 있어야 하는 본유지식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인류의 조상이 자신의 영혼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로 타락한 지식을 생성하게 되었으며, 그 지식은 오염되고 심각하게 부패되어 하나님을 왜곡되게 이해하거나 알지도 못하며, 빛이 없고 어두움뿐인 진리가 아닌 지식을 생성하게 된 지식이고, 이 지식을 후손에게 물려준 결과, 모든 타락의 후손들이 그 지식으로 살게 됨으로 죄의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진리와 거짓이 어떻게 융화가 될 수 있습니까? 거짓된 지식으로 작용되고 있는 영혼에 진리가 들어오면 그 진리가 작용하고 있는 거짓에 의해 왜곡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영혼은 거짓된 지식에 의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된 지식을 몰아내거나 잠재우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진리로 작용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인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미 작용하고 있는 거짓된 지식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이해하게 되고 멸시하여 순종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바로 이것을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울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하므로라는 말이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으나 그들은 그 율법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하여 곡해하고 왜곡하든지 아니면 무시하여 자기에게는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는 남에게는 율법대로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자기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에녹성을 쌓고 그곳으로 피하여 살면서 자기를 위한 강력한 법을 만들어 공표하여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자기는 자기에게 법이 되면서 율법을 공표하여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그러므로 자기는 지키지 않은 율법을 사람들에게 지키도록 가르치는 교사들의 위선에 대해서 사도가 고발하지만 실지로 사람들은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에 순종한다는 것은 영혼의 지성이 율법의 조명을 받은 지식을 생성하였을 때 그 지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복음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은 복음의 조명을 받은 지식을 가졌을 때 그 지식이 복음을 따라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진리를 이해할 수 없는 거짓된 지식을 잠재우고, 그 사람의 영혼에 율법을 심어 그 율법으로 조명한 새로운 지식들을 생성하여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 이후에는 복음을 영혼에 심어 지성을 조명하게 하여 지식을 생성하여 가진 지식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지고 갈 자기지식이 없는 비참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산다고 생각하고 교회에서 충성하고 살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복음의 조명으로 생성된 지식이 전무한 사람으로 서 있게 된다면 그의 수고가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왜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들이나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가?

그것은 우리 자신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16:24, 8:34, 14:27)라 하신 것은 곧 사람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의미를 바르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나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는 일을 환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긍휼하고, 불쌍하며 측은한 마음으로 지극히 인간적인 이해로 그 놀라운 희생에 감사해서 흐느끼는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주님의 죽으심에 관한 자기지식을 가질 때 영혼에 복음이나 율법의 조명을 통해서 지식을 생성하지 않으면 반드시 인간적인 감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가인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지식을 갖지 않고 율법이나 복음의 조명으로 받아 성경에서 그토록 자주 언급하는 인자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부터 이해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죽음을 대신 죽으신다는 지식이 영혼에서 생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복음과 율법의 조명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혼에서 대속의 죽음에 관한 지식을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그들에게서 창조 계획에 의해 아들들이 태어나도록 작정한 아들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작정에 의해 태어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고, 작정하지 않았는대도 불구하고 죄의 정욕으로 태어난 아들들을 허락에 의한 유기자들이라고 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세상에서 분명히 구별하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의 고통에 빠진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또한 아들을 보내시는데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께서는 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을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율법과 복음의 조명으로 생성된 지식에는 예수를 죽인 사람들을에 대한 정체를 너무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는 곧 아벨을 죽인 가인인 것입니다.

복음의 조명으로 본 가인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태어난 아들의 아니라 죄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아들임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통해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으며 말씀을 듣고 알되 거짓된 지식으로 알았고, 하나님께 제사를 행하되 자기지식으로 제사를 드린 거짓되고 위선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아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가인이 하나님을 만났고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벨을 죽일 정도로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많은 진리가 아닌 다른 생각들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해하는 거짓된 지식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는 다른 인간적인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죽인 장본이라는 지식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선생이 되고 성도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은 사람의 영혼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하늘위에 아니 교회의 십자가 위에 떠서 비취는 빛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하는 거듭나게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과 율법의 조명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지식이 거짓입니다. 그래서 거짓된 지식에 유혹되어 자기지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혼에 율법과 복음을 새겨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영웅심, 값싼 희생정신, 사단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이런 거짓된 지식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죽였다는 사실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들이 죄를 지었는데 그 죄의 대가를 대신 지셨다고 말만 할 뿐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기 때문에 쉽게 인용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자기들이 자기손으로 죽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