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우리가 전도자들로부터 들음 이후 복음과 복음의 주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을 통해 믿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깊은 깨우침이나 신령한 접촉, 초자연적인 신적 강제력 등으로 자신만의 주관적 경험을 통해 복음을 접할 수 있다거나 전도자의 설교 기술에 의해 설득되고 지적인 동의로 인하여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믿음을 갖는 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조화로움으로부터 심각하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말해왔습니다.
먼저 타락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스스로 진리로의 깨우치고 회개하여 처음 지음을 받은 사람의 상태로 스스로 돌이켜 고침을 갖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잠언20:9). 피조물이란 고등지식을 가진 존재로서 지성을 사용하는 사람과 감성의 한계까지만 재한된 짐승들 처럼 창조자가 설정한 그 이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같은 완전한 자유를 가진 존재로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신적 한계에 까지 넘나들며, 대등한 관계로서 하나님과 동등시하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과 대등하게 겨루고, 지혜를 나누며, 당당히 자기의 권리를 말하면서 소통하며 관계를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물론 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에 따라 사람을 최대의 한계로 설정하여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결코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하실 때 창조주 자신을 직접 대하실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대하신다면 피조물과의 접촉할 수 없는 존재적 차이로 인해 소통이란 전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지식을 내셔서 사람에게 보내셨고, 그 지식이 사람 수준으로 낮아져서 하나님을 보였고, 사람안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지식을 인식할 수 있도록 지식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지식을 거절함으로 불순종의 사건이 발생하였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할 수 있는 사건을 발생하는 피조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 완전하게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실패라는 판단 뿐만 아니라 하나님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혁신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피조물이 창조자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자기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는 놀라운 능력은 결국 창조주의 완전하심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만약 피조물이 자기 지식으로 완전하게 선한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 창조는 더 이상의 모습을 드러내는 피조물을 지으실 수 없는 하나님께 있어서 완전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실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완전했었습니다.(겔28:15) 그런데 그 사람에게 드러난 것은 불의였습니다. 그 불의는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피조물 상태에서 자기의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 곧 하나님의 지식에 대항하고 자기지식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기가 인식하는 그 지식대로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식에 대립하여 맞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셨다는 것은 의를 행할 수도 있고 불의를 행할 수도 있는 완전한 자의를 인식하는 자유를 드러낼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불의에 대해서는 차단되고 잠겨져 있으며 그 길을 절대 갈수 없는 재한 된 존재가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는 창조주가 불완전하게 만드셨고 결함을 가진 존재로 지었으며 불의를 행하면 안 되는 존재라는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지으셨다면 처음부터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의에 대한 KEY는 ON으로 하고 불의의 대하여는 Off 의 상태로 지으셨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의식에서 불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피조자체는 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을 이미 아시고 불의를 결코 행하지 못하도록 닫아 놓은 것이며, 이런 상태에서 사람에게 불의가 드러나면 그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으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판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의로움만 행하도록 지으셨는데, 그 사람이 억지로 불의를 행하였다는 지극히 불완전하고 조화롭지 못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런 상태로 사람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불의를 행할 수도 있고 의를 행할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이것을 자기 판단에 맡겨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고 불의를 행하거나 의를 행하거나 지음을 받은 완전한 상태에서는 불의를 행한 것이 결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죄를 지은 상태이지만 존재로서는 완전합니다.
오직 그가 죄를 범하고 불의를 드러낸 것입니다.
완전한 존재인 사람은 그가 행한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게되는데,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칭찬하시므로 상을 주시거나, 벌을 내리심으로 징계를 주시는 그런 보따리가 아니라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고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듯이 자기의 영혼에서 생성하는 지식의 결과를 자기가 받고, 영혼은 자기 지성이 생성하고 지각한 후 가진 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세상에 보냄을 받은 후 육체의 감성으로 인하여 객체를 감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본유지식으로 사람의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영혼의 감성으로 지각한후 다시 그 지식을 지성에 가짐으로 사람이 자기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자기영혼에 자기지식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최종 목적이고, 사람이 본유지식의 조명에 의해 지식을 가진 모든 지식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부합된 지식임으로 이 지식을 영혼에 가짐으로 질서롭고 조화로운 선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보내시는 선한 목적을 다이루신 모습을 세상에 보임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완전한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이 완전함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섭리로 드러나는 일들을 통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세상에 드러나셔서 사람과 관계를 가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셨고 이를 위해 사람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타락은 완전함 이상의 놀라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즐거움, 영광, 기쁨, 그 엄위와 환희, 이런 모든 장관들이 사람을 한층더 기쁘게 할 것이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넘쳐 나오는 지극한 선이 사람의 영혼이 자기지성으로 생성한 자기지식의 조명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쁨의 극치를 누릴 수 있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지식을 사람의 영혼에 심어 주셔서 사람으로 자기지식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으나 타락으로 말이암아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대신하여 대적과 미움, 불의, 갈등과 원망 같은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거짓지식을 생성하여 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요8:44)
날이 갈 수록 우리는 거짓과 불의의 정체를 분명히 밝혀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는 그 칭의에 대해서 정확한 개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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