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모든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롬3:22) 1,

생명있는 신앙 2013. 11. 11. 14:39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3:22)

율법은 이제 그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영혼 안에 있었던 하나님 형상의 본유지식에 있었던 것인데 사람의 타락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피조물인 사람에 관하여 더 정확한 설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의 질서로움이 어떻게 나타나며, 다른 피조물에 있어서는 창조주 하나님과는 어떻게 나타나는 것이 질서로운 것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 앞에 머리를 들 수 없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순종과 타락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은 말입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에 타락이라는 의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도록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순종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타락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타락이라는 말을 적용 시키려면 피조물이 독립적이고 스스로 자기의지로 행동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창조주가 피조물의 행동을 제한하도록 지었는데 그것이 제한을 벗어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입증하거나 하나님의 실수를 말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결코 실수를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혹 실수 하실 수 있는데 억지로 완전하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실 수 하실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속성이 완전하심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수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잘못 지으셔서 죄를 범하도록 지으실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지으셨는데 피조물이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그 상태에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런 존재의 완전한 상태를 사람에게 적용하고 그 의미들을 분명히 이해하지 않으면 결코 기독교의 바른 길을 향하여 한발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설령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지라도 구원의 확신은 언제나 바다위에 떠있는 배와 같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셨다고 말하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식으로 존재하는 점에 있어서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식을 내시고 그 지식으로 만물을 지으셨으며 지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심과 같이 사람은 육체라는 형이하학적인 실체를 가지면서 이 육체가 영혼에 있는 지식에 의해 활동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지음 받은 영혼은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이지만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실체이기 때문에 피조 세계에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영혼이 피조물처럼 육체를 가지지 않지만 존재하는 실체로서 하나님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영이시지만 자기의 의지를 지식으로 드러내실 수 있지만 사람의 영혼은 자기의 의지를 스스로 드러낼 수 없고, 하나님은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실 수 있으나 사람의 영혼은 조명을 받지 않고는 지식을 생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하는 피조물 가운데 사람을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의지는 지식이 반영되었을 때 그 지식대로 완전히 표현 되도록 육체를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지를 가지셨을 때 그 의지가 실행되려면 지식이 직접 작용하지만 사람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된 지식이 의지에 반영되어 지식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 의지를 행동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지식과 사람의 지식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의 독립 상태와 탁월성에 관하여 접근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곧 독립적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영혼과 육체가 결합하여 통합된 인격을 형성할 때 만 사람으로서 활동하는 존재를 드러내도록 하였으며 어느 한 부분으로는 사람의 역할 할 수 없도록 지어졌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을 통해 완전한 사람으로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을 때 완전한 존재입니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가져온 사람에게 부활이라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요구되고, 부활이 없는 죄의 용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시는 그 복음적 사실이 얼마나 우리에 큰 확신을 더하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드러나는 사실들에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에게 조명되어지고 복음의 의미까지도 점차 분명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를 살펴보면 볼수록 하나님의 아들을 보게 되고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분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살아야 하는 모범이었고, 그 삶에서 나타난 사람의 모습은 완전한 사람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인으로 추앙하면서 그분의 삶과 깨우침과 그리고 사랑과 용서의 철학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일반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으로 사람을 용서하며 뛰어난 교훈을 남겼으며, 사람으로서는 걸을 수 없는 용서와 화해의 길을 걸었다고 평하고 성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런 칭찬들과 평가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으로서 뛰어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한 존재로 평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자 하나님이 사람으로 보냄을 받으셨고, 친히 인자로서 낮아지셔셔 사람이 되셨으며, 사람으로 살며 사람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마다 우리와 다른 점들을 보게 되는데 그분에게는 죄가 없고 우리에게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그의 영혼의 지식에 왜곡되고 오염된 타락된 지식을 가지지 않았고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을 받아 참된 지식만을 가진 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을 잃어버림으로 거짓된 지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무지와 결함으로 오염된 타락된 지식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판단은 거짓되고 우리의 모든 행동들은 죄의 결과들일 뿐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분명히 발견하고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느니라(8:7,8)에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도가 말하는 육신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은 모든 영혼에 있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들은 육신의 감각으로부터 얻어진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영혼에서 생성된 지식으로서 마음에 반영된 지식들로 행위를 대기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수많은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의지의 결정을 기다리며 행위를 위해 대기하고 있으며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판단도 합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기 안에서 지식을 생성하고 그 지식을 발전시키기도 하며, 지식의 세계를 확장하며 넓히고 사상을 깊고 넓게 펼쳐 영혼의 세계를 개척하고 건설해갑니다. 이것으로 사람은 세상을 건설하고 변화시키며 사람을 위해 위대한 일도 하며 과학과 철학을 발전시켜 나가기도 합니다. 사람의 위대성은 바로 자기의 영혼에서 지식을 생성하고 그 생성된 지식에 대한 지각을 갖고 발전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육체의 수명이 다하면 그 모든 세계는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극히 일부만 피조세계에 반영될 뿐입니다. 놀랍게도 이 지식들은 모두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들입니다.

그 옛날 바벨의 지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자고 높은 대를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음을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했을 때 그들의 지혜는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세계에도 바벨의 지혜보다 더한 지식들이 세상에 뒤덮고 있습니다.

지혜들은 지식으로 드러내고 영혼의 지성에 있는 지식들이 세상으로 나와 사람의 위대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지식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에 주신 지식들로 시작하였고, 사람은 그 지식을 불과 수 천년에 급속도로 발전시켜 세상을 지식의 세계가 되게 했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도 하나님처럼 지식을 발전시켜 내고 그 지식으로 세상을 건설하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존재로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에는 결코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고 무지와 결함이 없습니다. 그 지식은 완전하기 때문에 생명을 가지고 불명합니다. 반면 사람의 지식은 모든 지식에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체 생성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항상 결함이 있어서 선하지 못하고 생명을 갖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지식은 사람의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17:3)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의 정체와 존재의 위대성에 관하여 말하였다면 다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사도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는 율법의 마침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를 얻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사도는 자신이 율법을 철저하게 완전히 지킨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은 의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만나고 자기가 그 토록 생명처럼 여겨왔던 바리새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전혀 합당하지 않은 신앙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심겨졌고, 이 복음을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복음에 대한 비밀들이 지성에서 생성되어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