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모든 사람의 조상 (롬4:16)

생명있는 신앙 2014. 10. 20. 08:01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4:16)

 

앞에서 우리는 율법 그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았습니다. 그것은 본래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주어진 사람이 마땅히 행할 길을 안내하는 삶에 대한 안내서와 같고, 죄를 범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몽학선생이며, 행위의 선악을 밝혀주는 거울과 같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도가 본문을 말하는 참된 의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을 자의 자격입니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셨는데 누가 이 아브라함을 이어 하나님의 백성의 상속을 이을 자인가? 라는 주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말하면서 율법과 믿음을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이고,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은 의며, 의는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다가 결국은 의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율법을 의지하여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까?

믿음이 있는 조상이었고 그 후손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으며 그 자손들에게 율법을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그가 믿음에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애매모호했던 율법과 믿음에 관한 논리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떤 의문이 있을지 저는 알 수 없으나 여기까지 말함으로 율법의 역할과 믿음이 어떻게 구별되며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로 되면 자랑할 것이 있으며, 사람의 노력의 여하에 따라 구원의 경쟁이 아주 치열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대학입시의 몇 천배 더 고통스런 삶이 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하여 종교사회는 혼란만 가중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원을 율법의 행위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도 율법으로 인하여 조상의 구원을 불확실한 논리에 빠지게 하고 자기들만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생각에 빠져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괘변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의 상속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을 상속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너로 말미암은 세상의 상속자에 대해서 분명히 언약하셨는데 그 언약의 대상들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창세기 15장에 관하여 언급한 내용인데 아브라함이 두려워 떨고 있던 날 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두려움을 몰아내 주시고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날 아브라함은 자기의 인생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다가올 위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종인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을 것이고 그를 중심으로 자기의 부족이 든든히 유지되기를 기대했었을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상황은 자기가 군대를 끌고 가서 조카 롯을 구해오는 과정으로 가나안의 대적이 되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상태는 성을 가진 견고한 터전위에 세워진 상태가 아닌 떠돌이 천막 속에 거하는 보잘 것 없는데 가나안이라는 벌집을 건드려 놨으니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험천만한 일로인하여 자기의 미래가 불확실하게 되었고 앞날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포 자기한 상태에서 자기의 후계자를 지목하여 맡겼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켜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시자 아브라함은 아닙니다. 나는 이제 포기합니다.” “다메섹 엘리에셀이나 지켜 주세요.” 라고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너의 후계자는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 주신다는 그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믿음이 일어나 믿기 시작하자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도는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그가 어떤 행위를 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불신앙의 삶으로 삶에 대해 절망하고 자기의 삶의 환경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너의 방패가 되고 너를 지켜 줄 것이며 네 몸에서 날자가 너의 후계자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고 이 약속을 마음으로 믿은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였던 것이지 아브라함이 어떤 율법을 행하였기 때문에 의라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