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기약대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6)
사도는 복음을 아주 간단하게 1) 그리스도께서, 2) 기약대로, 3)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4) 죽으셨도다, 라고 요약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사도의 요약은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한줄 문단으로 정리해준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소통 할 수 없도록 관계가 단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약할 때에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람은 연약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삶에서도,
자연에 대응하는 환경적 대처능력에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회를 운영하는 능력에서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에서도,
심지어 가정을 이끌어가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데 있어서도,
사람은 너무도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연약을 깨닫고 어떤 상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있어서도,
뚜렷한 대상을 찾지 못하는 무지한 상태에 있다는 점에 있어서도,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발견을 하지 않으면,
반대로 사람은 아주 교만하고 거만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된 이유는,
지음을 받은 목적으로부터 이탈해 버렸고,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존재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
삶에서 아무런 고민없이 부딪히는 대로 인생을 보내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창조시 계획한 사람이 아닙니다.
완전히 목적으로부터 벗어났고, 안아무인격인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이 이르지 못한 연구물이나 창조물의 결과가 다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결과를 얻을 때, 의외의 결과물들에 대한 또 다른 성취감을 갖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거나, 창조 계획 계에서 보완을 거쳐 완전하게 하시며, 쓸모없는 것은 처음부터 만드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지음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셨기 때문에 완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지으심과 전혀 동떨어진 결과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를 벗어나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계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해악의 존재가 되어 버렸슴니다.
'하나님의 선'에서 완전히 이탈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연약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세계와 동떨어진 존재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선'에 적응되어야 하는 피조된 세계의 규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은 '질서로움과 조화로움'입니다.
'질서롭다'라는 것은 자기에게 부여된 '자기의 자리'에 적용되는 것을 의미하고,
'조화롭다'는 것은 그 자리에 있으므로 주위의 다른 존재들과 '어울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약한 것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공급되어지는 혜택들로부터 제외되고 있으며,
다른 피조물들과 조화되지 않으므로,
함께 해야 할 그 세계에서 거절당하며,
정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1
이는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상태에 스스로 처하고 말았습니다.
죄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유리 방황하는 연약한 존재가 되게 한 것입니다.
이 연약함의 의미는 단순히 양태적인 삶의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까지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아직 연약 할 때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상태에 처해 있는데 그 상태가 어떤 것이냐? 하는것은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에 대해서 사도가 표현하기를,
라고 했습니다. (엡2:11~12)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실대로 외면해 버리셨느냐?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쓸모 없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 입니다.
'그리스도'는 다른 말로 "메시아" 곧, '구원자'입니다.
사도의 말을 다시 되새기면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메시아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 메시아는 우리의 연약한 상태를 벗기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상태는 하나님의 선에 적용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선의 상태에 적용된다는 것은 곧 '질서와 조화'에 적용시키는 것으로,
사람을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반드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놓고,
만물을 다 지으신 하나님이 피조물들을 보시고 반응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당신의 완전하신 '전지하심'의 속성에 따라,
이미 설명 한 것과 같이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이탈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무지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과감히 선언하셨습니다.
우리가 더이상 무슨 증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거듭하여 우리 존재의 증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사도가 증거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언,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롬5:10)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골1:21)
라는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도 죄에 속한 우리의 비참을 거듭하여 확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동의합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 일을 기뻐하셨습니까?"
"어찌하여 아들을 내어주시고 이 쓸모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려 하셨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이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아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쳐지며 온몸의 근육이 떨리는 고통을 느낍니다.
질서롭고 조화로운 아름다운 세상에 한 존재가 있습니다.
그는 무질서하며 질서로운 세상을 파괴하는 전혀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내어주시면서 이런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있게 한 그 원인에 대해서 스스로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실때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세계에 속한 자중 유일하게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한 존재인 사람에게 묻습니다.
이스라엘이나 헬라인이나 스구디아인에게나 종이나 자유자에게 묻습니다. 곧, 사람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속히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질서의 세계에 돌아가서 우리의 자리를 잡고 조화로운 세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를 강제로 끌어다가 본래 우리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그자리에 설수 있는 적절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죄되고 타락한 저급한 존재의 속성을 벗고, 경건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죽고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안에 있는 부조화된 사람의 본성을 꺼내서 버리고 새로운 본성으로 바꿔서 지음을 받은 본질에 충실한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본성은 타락하여 무질서하고 부조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질서로운 세상에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지옥에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죽지 않고 거듭나게 하려면 유일한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하여 죽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이냐고 제가 묻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셨고, 때가차매 기약대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분을 맞이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본질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영원한 저주와 비참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오직 한가지의 방법은 여러분이 죽는 길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한가지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이제 여러분이 해야할 오직 한가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허락하신 그 일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누가 자기 살자고 하나님을 죽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살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야 하고, 하나님깨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라고 허락하셨으며,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일을 하지 못합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의로운채하지만,
그 오만과 거만 때문에 여러분은 비참에서벗어나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내어주셨고,
그에게 죄를 씌워 죽이라고 하셨으나,
여러분은 죄의 자식이기 때문에 죄를 죽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최초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죄를 가져왔습니다.
그 아들은 우리를 죄의 상태에서 낳아 죄의 열매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가져온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면 더이상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죄를 지은 하나님의 아들은 그 죄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를 짓지 않은 한 아들을 다시 보내셔서 죄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므로 죄가 죽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죄,
그 죄를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최초 죄를 가져온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면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 내용을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게 서신으로(고전15장)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보내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두번째 아담( 고전 15:45)이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땅에 속한 사람의 형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안에 있는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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