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6편
이 시는 표제에 ‘다윗의 믹담’이라고 붙어 있다. 믹담이라는 의미는 매우 정련된 금보다 더 가치 있는 황금의 시라고 번역한다.
* 나는 주밖에 없습니다.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오니 주밖에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 영혼이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의 지식이 충만한 때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하나님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하나님과 관계된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가까이 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성령의 이끄심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은 자입니다.
그의 삶에 나타난 삶의 중심을 보면 자기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려는 열심이 우선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누가 다윗을 보든지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려는 계시적인 의미를 드러나게 합니다.
곧 다윗을 보고 "하나님이 계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모호하고 신비로운 점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의 성격에서 아주 잘 나타납니다.
다윗은 모든 사람과 동일한 죄인이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특출한 의지에 있어서는 남들보다 뛰어납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양치기로서의 용맹,
하나님을 의지하는 뛰어난 의지력,
골리앗 앞에서의 신비한 능력,
사울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손길에 대한 경외감,
왕으로서의 인자함과 뛰어난 예지력 및 하나님의 판단을 존중,
사람으로서의 하나님 앞에서의 위치 등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일반인 들에게서 드러나지 못하는 신앙의 절대 우위성이 그의 성격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주를 믿는 자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고백은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나타날 일률적인 모습들로서 성령의 마음이 보입니다.
이 시도 역시 10~11절에서 주님의 마음이 예언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입니다.
* 우상을 멀리함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이 신들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말합니다.
우상을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정체에 대한 상당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필연적으로 이원론적인 사고를 벗기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타락한 모든 지식 자체가 언어의 의미에 있어서 무지와 결함을 함의 한 왜곡된 지식이기 때문에 무지부분을 대부분 허상을 꾸며 의미를 부여하는 가설적 함의를 포함하여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에도 역시 왜곡된 지식들이 대부분인 언어를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언어를 전달함으로 듣는 사람들로 오해와 다른 의미로 이해하도록 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지성에서의 지적인 작용에 있어서 진리이신 성령의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로 인하여 반드시 오류를 조금이라도 제거된 의미의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성령께서 조명해주신 말씀으로 사고하고 생각한다면 그 언어의 내용을 우리 영혼이 지각할 탠데 진리로 인하여 얼마나 풍부한 기쁨을 누리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전율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영혼의 기쁨을 위해 우상에게 생각을 돌리지 않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멀리하려고 했던 이유가 곧 진리가 아닌 생각을 하는 것을 자기에게 조금도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산업의 주인이신 하나님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는 자시니이다.
6, 내가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우리의 문화와 삶의 환경에 대한 자신의 평가는 자신 안에 있는 지적인 감정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만 삶의 활동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예술 활동을 하시기 때문에 아주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는 세상을 판단하는 진리의 지식이 기준으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의 지식의 정도가 얼마냐에 따라 여러분의 삶의 방향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우상에 지우친 지식을 가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모든 지식이 어두운 우상의 지식에 있습니다.
그는 우상에 대한 지적 감각이 뛰어나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문화와 삶의 감각을 가지고 뛰어난 안목으로 스스로 자기만의 세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우상의 지식이 영혼의 지성을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영감을 가지기도 하고 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우상이 조직화되고 향상화되어 그의 영혼의 지성은 더욱 우상지식으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는 자기안에 있는 지식의 한계밖을 결코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자기 산업의 전문가가 되면 그 지식에 있어서 뛰어난 감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지식의 힘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각각이 자기만의 독특한 지적인 세계를 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자기지식의 세계인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가까이 있음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 할지라 밤마다 나의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 쪽에 계심으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 하리로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영혼을 점령했습니다.
몰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읽어서 가까이 할 수밖에 없을 수 있었으나, 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그와 함께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보고 사람에게 풍기는 향기라는 의미를 신뢰합니다.
그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있는 지식의 정도에 따라 사람은 그 향기를 품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알고 있다면 그 아는 지식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되게하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의 사고와 생각이 치우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하다면 사람들의 모임은 온통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할 것이고 이것으로 더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붙드심에 대한 확신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아니하실 것임이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 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 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 부분은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날 행한 설교에 인용되었습니다.(행2:25~28)
모든 시의 내용에서 주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시편기자의 영혼의 지성에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정도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영혼의 지성에 성령의 조명하심이 충만하면 당연히 여러분이 삶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고 사람들이 그 향기를 느끼므로 주님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베드로에게는 설교로 나타났으나 우리에게는 우리가 추구하는 문화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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