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노이아는 회개를 의미한다. 이는 원죄의 개념을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의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원죄를 인정하는 사람의 개념으로 메타노이아는 죄의 세계에서 돌아섬을 의미하지만 원죄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죄의 세계가 아니라 그가 생존해서 사는 날동안에 행한 죄의 행위로부터 늬우치고 속죄하고 그런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 변화의 마음으로 회심을 의미한다.
회심은 반드시 죄에서 돌이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헬라 철학의 의미에서 회심은 선한 상태에서 악한 상태로 돌이키는 경우도 회심이다.
선하게 살던 사람이 원한을 가지고 마음을 돌이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경우 회심하여 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할수 잇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 지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다 회심이라하면 악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던 사람이 깨우치고 돌이켜 선한 마음을 가지고 변화되었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언어가 사람의 마음에 들어 올때에는 마음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사고하도록 고정과정을 겪는다. 이를 순화라고 하자.
사람들은 언어가 사람의 마음에 접근함으로써 벌써 변화의 행동을 하게 된다.
악한 사람에게 마음을 누그러 뜨리는 것과 악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 로고스의 활동력있는 역할에 의한다.
그러므로 로고스로서의 회심은 악을 향한 마을으로 돌이키는 것을 위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지향하는 고정의미로 순화시켜 사람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헬라의 철학의 의미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메타노이아"라는 로고스적의미로서 개념은 돌이키는 것 즉 악한 상태에서 선한 상태를 향하는 마음으로 돌이키는 순화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도올이 이해하는 개념이라고 스스로 말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메타노이아의 개념은 나라(집)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성선설이나 성악설과 같은 노자의 사상에 의해 개념화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성경을 완전히 잘못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은 선악이라는 사고의 개념이 이루어 지기 이전에 창조의 세계에 있는 하나님안에서의 창조세계의 질서로서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는 선악의 개념이 없다. 선악의 개념은 피조물인 사람의 입장에서 선악이라는 이원론적인 개념이 도촐 된 것이지 하나님안에서의 성경은 결코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성경의 내용을 선악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며 사고한다면 성경의 의미를 결코 바르게 해석할수 없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순종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강제적인 자유를 박탈하고 억업하는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순종이 아니라 피조물이 스스로의 존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순종이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안전하게 존재 되도록 순종을 명하셨으며 불순종의 댓가에 대한 피조물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회심의 의미도 성경이 말하는 의미는 나라의 개념에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것이지 다른 철학적인 의미의 개념을 성경에 도입해본다면 그 의미는 결코 바르게 해석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라고 했다.
사람의 신분을 밝혀 마귀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양반과 상놈의 신분사회가 있듯이 성경이 말하는 신분의 개념또한 분명히 하나님의 자식(요 1:11-12)과 마귀의 자식(요 8:44)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요한 1,2,3,서, 요한복음의 전체적인 사고가 줄곳 가지고 있는 저자의 사고였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방해하는 옛뱀 곧 사단이라고 하는 존재와 그로부터 탄생한 이 세상사람들,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백성, 분명하게 구분되는 사고로 기록한 내용들이다.
이 사고의 근거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직접 경험한 밧모섬에서의 실제적인 환영이었다.
그렇다면 마귀자식이라는 의미는두말할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존재들의 ㅈ비합체를 의미한다. 이를 나라의 개념으로 이해하자면 하나님나라와 마귀의 나라로 이해가 될 것이나 이는 선능 긋고 장벽을 만들어 이나라와 저나라가 서로 적대시하는 그런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안에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가 공존하며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이다. 한나라안에 찬반 양론의 대릭각을 세운 사람들이 공존하듯이 하나님의 세계안에 피조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과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마귀들의 나라에는 마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귀와 천사가 같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각이나 삶의 양식은 분명히 다르다. 그런환경속에 있는 서로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사고를 바꾸고 다른 편을 향하여 신분을 옮기는 것 이것이 "메타노이아"의 의미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나님을 거슬러 배반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다.
흙의 집에 사는 날동안만 사람의 살수 있고 그 다음에는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육체의 옷을 입고 있는 날 동안을 다음에 어떤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인지 영혼에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다.
마귀의 자식(요한복음 8:44)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식(요한복음 1:11-12)으로 돌아가는 기회는 영혼이 육체안에 있는 날 동안 뿐이다.
육체는 영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지어진 존재이며 유한한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안에 영혼을 가두고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회를 주기위해 지으셨다.
도올은 그가 이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가는 기회안에 살고 있다.
그가 이세상에 서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하거나 하는것은 온전히 그의 결심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그가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식으로 신분이 바뀌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악을 행할수도 있고 마귀의 자식으로서 선을 행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발끈할 것이다. 그것은 헬라 철학의 의미로 로고스(말)가 사람의 마음에 접촉할때 순화의 과정을 거쳐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사고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하자면 하나님의 안에서 악을 행한다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일은 전혀 있을 수 없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고 고정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안에서 악을 행한다"는 말은 지극히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람의 사고가 선악의 개념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앞에서 하나님안에서는 선과 악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가장중요하다.
하나님안에서는 선이 없으며 악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도 선이다 악이다 라고 하나님안에서는 판단을 받지 아니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고는 선과 악을 사고에 의해 행동 여하가 달려지는 사고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창세기 3:5에 "타락하게되면 선악을 알게 될줄을 하나님이 아실 것이라고 사단이 건낸 말이 시조가 되었다. 사단은 사람을 유혹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선악의 개념을 들고와 사람을 유혹하였다. 데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대한 결정적인 kEY 는 선악에 있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선하게 보이느냐 악하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결정하게 된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에서 사람이 행동하기 전에 행동을 위하여 필수적인 결정을 하는 검색데이터의 기본을 선악으로 고정화시켜 놓았다.
성경을 이것을 마귀의 자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은 바로 이런 개념에 의하여 성경을 접근하고 해석함으로써 도덕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선악의 개념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제쳐 두고라도 선악을 무시하고서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그가 성경을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결정은 그의 지적인 사고에 성경을 대입하여 보고 선한것이 많은지 적인지 량적으로 판단해 보고 결정할 것이다.
육체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에 불순종하는 삶에서 순종하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이 "메타노이아"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육체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본래 절대 회개할 수 없는 마귀를 인간의 육체에 가도고 기회가 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나라에 있는 마귀의 영들이 이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 비밀에 대해서는 알수 없으나 간단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한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가?
도올에게도 말이다.
너무 빗나가고 상상이 위험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회개란 마귀의 자녀에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돌아가는 신분상의 변화를 이미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도올의 "메타노이아" 사고는 성경의 의미와는 젼혀 맞지 않는다.
다음은 "구약성경과 성황당"을 살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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