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
하나님의 아들들은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인에게 내어줍니다.
여기에는 깊은 신학적인 의미들이 있습니다. 내어줌의 섭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르고 행한 일입니다. 그 일은 되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결코 벗어나서 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이미 다 아시고 계시고 그 일들이 하나님과 혹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도 계획되어진 것입니다. 오늘 현재 세상의 발전된 세상을 하나님께서 모르시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시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도 알고 계시며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어두움이 세상을 덮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르는 선택받은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더욱 불행은 어두운 때 태어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실상은 이스라엘의 어두운 때와 같은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 있고, 언제나 매일 같이 하나님을 향하여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대하는 모든 행위는 불신자보다 더 위선적이었습니다.
당시 세상의 권력을 가진 로마와 짝하고 아부하며 모든 생계를 의탁하며 심지어 대제사장의 임명권도 로마의 권한에 두는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처참한 상황에 처한 것은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제사도 있으며, 교육도 있고,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작 그들의 영혼에 말씀을 새겨주는 진리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언제나 진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못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전하고 들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왜곡된 지식으로 일관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않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제사를 주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제사와 함께 할 수 없었고 가르치는 말씀과 함께 할 수 없는 가인의 제사와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단에서 선포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인 순종자들에게 아멘으로 화답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보이는 것 같으나 성령은 그 말씀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선에 합치되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은 질서롭고 조화로운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들고 성경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설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선을 대비하여 말씀을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설교할지라도 하나님의 선에 합치하지 않으면 그 설교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4:20)”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능력이라 할 때는 그 말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드러내는 역사, 곧 성령께서 말과 함께 함으로 드러내는 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16:13)”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을 높이어 말씀하시는 표현입니다. 자신이 진리이시면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하시는 성령이라는 뜻인데 진리와 함께라는 뜻을 의미하고 그 성령을 우리는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구별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에 합치된 말씀이어야 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자신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선에 합치하는지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선에 합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선에 합치한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말이 성경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들은 정말로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을 뿐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 곧 질서와 조화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을 향하여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피조세계가 드러내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이 성경적으로 하는 설교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설교여야 합니다. 그 설교는 선에 합치되는 설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선에 합치한 설교’란 말이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말하면서 왜, 교회의 사역자들이나 구약의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합니까? 하나님의 백성, 약속의 아들들인 이스라엘, 이들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잉태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잉태 된 사람들의 탄생을 허락하심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없는 이방인들이 태어났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계획이었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을 일으켜 낳은 이방인에 관한 것이 아님을 먼저 잘 알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는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에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구원이 우리에게 넘겨 온 것에 대한 지식을 깨우쳐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영혼에 관하여 많은 설명들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영혼은 육체와 소통할 수 없게 된 원인으로 인하여 영혼이 가진 지식을 육체에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영혼이 인식하고 있는 지식은 영원한 삶과 영혼의 미래, 그리고 그들의 탄생에 관하여 알게 되는 지식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로 살도록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창6:3)
이방인의 영혼은 자신의 미래와 비참에 처한 비극적인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로부터 비롯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과는 무관하며, 미래에 대한 비참함의 결과를 벗어날 수도 없고 변개할 수도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상에는 지옥이 있는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지옥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지옥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사람을 위해 만들어 졌습니까?
지옥은 범죄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들이 정욕을 일으켜 잉태하여 낳은 아들들 때문에 만들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영혼의 교리에 대한 많은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영혼의 존재는 사람이 잉태하는 순간에 지으셔서 넣어주신다는 교리를 믿거나, 아니면 이미 많은 영혼들을 만들어 두셨다가 육체의 사람이 태어날 때 부여해 주신다는 등, 갖가지의 교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영혼의 교리는 하나님의 선에 부합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에 관한 갖가지 교리들이 정리되지 않은채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도 영혼의 교리에 관해서 한 두마디의 말로 정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혼이 존재하는 분명한 사실로부터 질서대로 인식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영혼은 사람이 태어날 때 육체의 탄생과 같이 영혼도 아버지의 영혼으로부터 온전한 사람으로 잉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성장하며 자기의 기능을 성실히 합니다.
처음 영혼은 그 지성에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 영혼은 태어난 후에 지식을 가지게 되는데 그 지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선한 지식을 가진 존재라면 선한 사람이 되지만, 거짓된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그 사람은 거짓된 지식을 가진 사람이 될 뿐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영혼은 지식을 생성하여 가진 종류에 따라 사람이 결정되어집니다.
타락한 영혼은 그 안에 하나님 알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다 해도 만난 하나님을 진리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을 영원한 세상에 있도록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제멋대로 사는 그런 영혼이 영원한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 세상은 아름다운 동산이 아니라 혼란스런 동산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거짓된 지식을 가진 영혼을 구별해둘 장소로 지옥을 만드실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죄하여 정욕을 일으키게 되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잉태하여 낳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도 더럽힐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영원한 세상에서 그들의 지식에 나오지 못하도록 영혼의 활동을 억제했어야 했습니다. 그 방법이 그들의 영혼이 지적인 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고통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통 때문에 지적인 작용을 하지 못하는 곳, 고통스런 슬픔이 있는 곳이 지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정욕에 의해 태어난 이방인들의 영혼은 바로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하여 죽이는 일을 밥먹듯이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으로 하여금 육체와의 소통을 막기 이전까지 사람의 세상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하고 미어하며 죽이는 일만 일삼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향하여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 마음으로 계획하는 모든 일이 항상 악함뿐임을 보시고(6:5)”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함을 저주하는 상태로 태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분노와 미움은 극에 달하였던 것입니다. 실지로 우리도 이방인으로 있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미움이 극에 치솟았습니다. 이유없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미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범죄한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하는 원인에 대해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셨을 때 그 아들에 관하여 심한 질투를 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지만 먼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주셨으나, 그들이 그 지식에 충실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보다는 자기들의 생각에 치우쳐 하나님의 아들들을 왜곡되게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이방인에게 내어주어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고 이방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대속의 섭리의 비밀이 있었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은 자기를 존재하게한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으로 분노를 쏟았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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